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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웅, 막간의 기록

BUNDLE 2021. 8. 28. 21:50

이미지 출처 @eu_howl

 

—이하 주간 레이븐 발췌,

제7성력 1582년 그림자4월의 기록.

 

  단단하지만 온기가 깃든 손. 수없이 많은 생명을 구해냈으며, 다시 그 배에 달하는 생명을 구해낼 손. 그와 악수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동시대에 태어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일 것이다.

 

 

1. 풀네임: 미상. 평민출신일뿐더러 제7재해에서 고향을 잃어 성씨를 사용하는 일은 없게 됐다. 대도시에 가면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해빠진 성씨였다는 소문은 있지만, 이제 와서 성을 붙여 부르기엔 아무래도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칭호의 수가 너무 많아진 듯하다.

 

2. 나이와 종족: 30대 초중반, 중원 휴런.

 

3. 주 클래스: 투사 계열의 거의 모든 직업. 근거리에서 공격 가능한 무기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제국과 본격적인 항쟁을 시작한 이후, 본인의 역할과 무게를 인식하면서 전투 대열의 최전방에 서는 일이 잦아졌다. 유격전이 되는 경우 나쁘지 않은 궁술 실력을 보였다는 연합군 병사들의 증언이 있다. 다만 전투마법을 다루는 실력만은 영웅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한다.

 

4. 모험가가 되기 전에 했던 일은?: 밭일을 돕고 글을 배우고, 휴일에는 각지로 낚시를 다니곤 했다. 에오르제아의 여느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촌락에서 자랐으나, 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서 가장 힘을 잘 쓰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5. 모험가가 되기로 한 이유는?: 농번기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던 것을 시작으로, 1560년대 모험가 길드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맞물려 모험가의 길을 권유받았다. 주변에서는 부와 명성, 강함을 동경하여 떠난 길이었다 추측하고 있으나 ‘새벽의 혈맹’ 접수원은 단순히 그의 집 근처 낚시터가 비좁았을 뿐이라 증언했다.

 

6. 빛의 전사, 영웅이라는 호칭에 대한 생각: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영웅이라 불러주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며 겸손한 소회를 밝혔다.

  “때로는 그 이름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책임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제게는 과분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만큼 여러분이 저를 신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치 교과서라도 읽듯이 모범적으로 각오를 다지는 그를 향해, 취재를 감독하러 나온 동 ‘새벽의 혈맹*’ 소속 르베유르 가의 장손이 오케이 사인을 전했다.

(*이하, ‘새벽’으로 칭한다.)

 

7. 영웅이라 불리게 된 후 가장 기뻤던 일: 헤어졌다고 생각한 ‘새벽’의 동료들과 극적으로 재회했던 일. 세상에 동료의 생환만큼 당황스럽고 벅차오르는 일은 없을 거다, 영웅은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숙적을 무찌르고 세계를 구하는 일은 ‘기쁜 일’이라기보다는 ‘해방감이 드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8. 영웅이라 불리게 된 후 가장 슬펐던 일: 영웅의 일대기에서 가장 거대한 비극은 ‘여왕 나나모 암살 누명 사건’일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힘들었던 시절 자신의 성도 입성을 도와준 맹우의 죽음이 가장 괴로웠다며 미간을 짚었다.

 

9. 좋아하는 음식: 육류 전반을 좋아한다. 맛있고 기름진 음식에는 사족을 못 쓰는 듯하나, 채식을 가리는 것은 아니며 씹어 삼킬 수 있는 것이라면 주어진 음식에는 거의 불만을 갖지 않았다. 미식을 좋아하지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식용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것까지도 조리해 먹는다고 한다. 최근 꽂힌 음식은 샌드위치와 훈제 치킨.”

 

10. 좋아하는 장소: 그는 ‘너무 많아서 가릴 수 없다’고 하였으나 대답 순으로 몇 곳을 추려 놓는다. 검은장막숲 남부삼림의 옛 암다포르성 유적지, 림사 로민사의 어부 길드가 인접한 항구, 남부 다날란의 사골리 사막, 이슈가르드의 구름안개 거리, 커르다스의 용머리 전진기지, 쿠가네 성의 지붕 꼭대기와 노르브란트의 크리스타리움*.

(*알데나드 바깥의 미개척지로 추정.)

 

11. 좋아하는 색: 바다안개색. 먼바다 낚시를 떠나면 가장 자주 보이는 색이라고 한다.

 

12. 좋아하는 무기: 역시 ‘너무 많아서 가릴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웅의 무기를 동경하는 모험가들을 위해 추천하는 무기를 몇 가지만 추려 달라고 부탁하자, ‘쥐었을 때 손에 착 감기고 성능과 외관이 모두 뛰어난 무기’라며 얼버무렸다.

 

13. 좋아하는 꼬마친구: 그는 언제나 새로운 자동인형을 데리고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하였으나, 지난 몇 달은 붉은 머리의 미코테족 인형과 함께 목격되었다는 증언만 들려오고 있다. 이유를 물어도 답변을 회피하는 것으로 미루어 사생활 관련이라는 추측이 쇄도하고 있다.

 

14. 가장 좋아하는 에오르제아 도시: 한 곳을 골라 달라고 하자, 그는 테라스에 앉은 ‘새벽’ 소속 현자들을 돌아보며 정치적인 이유로 답변이 곤란하다고 했다. 총사령부 간 충돌이 우려된다는 이유 같았다. 그러나 현자들이 자리를 비우고 잠시 뒤, 침묵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바꾸었다. 꼭 에오르제아 안에서 골라야 하나?

 

15. 가장 좋아하는 야만족: 이번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대답을 거절하는 듯했으나, 최근 림사 로민사와의 갈등을 해결한 코볼드족 맹우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6. 가장 싫어하는 야만족: 없다, 그는 아주 단호하게 일축했다.

 

17. 결전, 싸움을 앞두면 하는 일: 장비를 점검하고 방 청소를 한다. 방을 청소하는 이유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치우는 이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전투 돌입 전, 열두 신을 비롯한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18. 가장 즐거웠던 임무는?: 초보 모험가 시절, 빈민가를 약탈하는 도적 떼를 소탕했던 임무. 제법 악명이 높은 도적 떼였는데, 그 임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모험가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름을 알리고 난 뒤로는 야만신 ‘나이츠 오브 라운드’ 토벌 작전이 기억에 남는다.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지만, 임무를 마치며 강한 희열을 느낀 건 사실이다.

  최근 맡았던 임무 중에는 림사 로민사의 단죄당과 충돌했던 건이 떠오른다. 당연히 정치적인 이유는 아니고, 그 과정에서 동료의 새로운(다양한, 귀여운, 놀라운…… 그는 단어를 여러 번 바꾸었다.)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19. 가장 힘들었던 임무는?: 힘든 임무야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내막까지 소상히 밝히고 싶지는 않다. 갈수록 몸이 위험해지는 임무보다 정신을 지치게 하는 임무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 최근 맡았던 임무 중에서는 소프로시네를 마주쳤던 임무가 그런 식이었다.

 

20. 제국에 대한 생각: 그는 제국의 위협과 관심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아주 과감하게 털어놓았으나 그 대부분은 에오르제아 동맹의 평화와 영웅의 앞날을 고려할 때 지면에 실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21. 같은 편이길 바랐던 상대가 있다면?: 일베르드와 요츠유. 그들의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어도 그 사정의 딱함은 이해한다. 만난 시기가 달랐더라면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움이 남는다.

  취재를 마치고 위 질답을 읽어본 ‘새벽’ 일원이 “어머, 하데스는요?” 하고 능글맞게 물었다. 하데스란 그가 상대했던 적의 이름인 듯했는데, 영웅은 “그 녀석은 이미 우리 편이야. 라며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22. 아씨엔에 대한 생각: ‘새벽’ 소속의 현자 위리앙제 오귀레가 영웅과 나눈 대담의 일부를 인용한다.

  “그 도시를 보고 나면 감정이 동할 수밖에 없지. 놈들의 사상이나 제국이 해 놓은 짓에 찬성하는 건 아냐. 그냥 기분이 이상해진다는 뜻이지. 문명이 어떻다, 기술이 저렇다 해도, 결국 마지막까지 이별을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발버둥친 점은 우리들과 다르지 않잖아?”

  “확실히 그 점은 이상하지요……. 그들이 진실로 완전하였다면 종말의 날에 절멸하지도 않았을 터……. 사랑과 외로움을 아는 이들이 독립 개체로서 완전하였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고대의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그래? 그런 것까진 모르겠는데. 사람이라면 누군들 외로움을 타고, 혼자서는 너무 빠르게 지쳐. 그러니까 다들 어울려 사는 게 아닌가. 곁에서 끊임없이 사랑과 장작을 때워줄 이들을 찾아서.”

 

23. 야만신에 대한 생각: 토벌 이외의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누군가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반드시 자신이어야 한다. 무의미한 희생이 늘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요즈음은 두려움보다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낀다.

  그는 말을 멈추고 뒷목을 만졌다. 근처를 배회하던 ‘새벽’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백발의 사내가 화제를 돌리라며 눈치를 주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소환의 원리가 어찌 되었건,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에게 현혹되지 않고 토벌할 수 있는 능력이 오로지 그에게만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24. 많은 임무에 대한 생각: 호출이 겹칠 때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특히 정신적인 피로가 견디기 어렵다. 그럴 때는 급한 임무만 되는대로 끝내놓고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있다. 지친다고 해서 맡은 임무를 저버릴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그가 그렇게 한탄하면, 취재를 감독하던 르베유르 가의 장손이 기록으로 남겨질 대담인데 조금 더 활기 있게 대답하는 편이 어떻겠느냐며 농담을 던졌다.

 

25. 휴일에 주로 하는 일: 영웅이 휴일마다 낚시를 즐긴다는 사실은 공공연하다. 낚시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훈련을 돕거나 밀린 연락을 처리하는 듯하다. 

 

26. 영웅이 아닌, 권력에 욕심이 있다/없다: 없다. 그는 은퇴 후 세속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번에도 그는 ‘새벽’을 포함한 옛 동료들이 이끌어가는 정치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답했으며, 다시 태어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정계에 발을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니 모쪼록 안심하라 못박았다.

 

27. 평화가 찾아온다면 하고 싶은 일: 은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한참 말이 없더니, 평화를 찾은 뒤에는 영웅의 이름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이와 여유로운 모험이 떠나고 싶다며 선선하게 웃었다.

 

28. 본인만의 징크스가 있다면?: 몇 달을 기다려 터주가 뜨는 날이면 항상 긴급한 임무 호출이 들어오는 것. 이중 낚아채기만 사용하면 항상 목표했던 그 놈이 아닌 것. 희귀 전리품 입찰 순번에서 90을 받아 안심하고 있으면 그 위에는 항상 더 큰 수가 있다는 것.

  이어서 그는 징크스에 관련된 일화를 삼십 분 가량 떠들었다. 영웅의 말수가 이토록 많아지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29. 최근 들어 가장 당황했던 일: 식성이 조금 바뀐 듯하다. 이전까지는 일절 편식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그인데, 지난 몇 달 간은 채소류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육류 섭취량만 두 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마치 신체의 대사량이 2인분으로 늘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의 영향일까? 새벽의 접수원은 그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고 있다.

 

30. 최근 들어 가장 흥미 있던 일: 타타루가 그라하의 털을 엮어 라라펠용 털장갑을 만든 것. 하나 달라고 했더니 정말 받았다. 손에 맞는 크기가 아니라 사용하진 못하겠지만, 기념으로 개인실에 보관해 두고 있다.

 

31. 최근 들어 해보고 싶은 일: 다음 대규모 임무가 있기 전까지 동료들과 사생활을 만끽하는 것. 몇 달 전 화분을 하나 선물받았는데, 물을 알맞게 주고 있는데도 이파리가 시들기 시작했다. 조만간 원예가 길드를 찾아가 볼 생각이다.

 

32. 최근 들어 드는 생각: 초코보에게 더 잘해주어야겠다. 비록 씻기고 치우고 먹이기가 야만신 토벌만큼 귀찮기는 해도.

 

33. 지우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저지른 일을 지워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나는 앞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이다.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겠다. 물론… 며칠 전 알리제가 남겨둔 특제 쿠키를 주인 없는 과자인 줄 알고 집어먹었다가 냉전에 빠진 일은 지우고 싶다. 읽고 있다면 지워 줘, 알리제. 내가 정말 잘못했다니까!

 

34. 가장 소중한 사람은?: 사적인 질문은 사절하겠다며 손사래를 친 그였으나 이번 질문에는 유독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는 곳에서 재차 질문하자, 그는 ‘이 별의 모두가 변함없이 소중하지만 자신에게도 특별한 사람 정도는 있다’고 대답했다.

  본지는 그 자의 신상과 영웅의 사생활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대하여 할 말이 있지 않느냐고 추가 질문을 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만 말해도 그 녀석은 알아듣는다, 하며 다음 질문을 재촉했다.

 

35. 소중한 사람과 세계의 평화 중 골라야 한다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는 법이 있나?” 그는 진심으로 질문의 취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36. 소중한 사람과 자신의 목숨 중 더 중요한 것은?: 둘 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웅이자 친우인 그의 목숨일 것이므로, 소중한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둘은 분리되지 않아야만 한다.

 

37. 자신의 행동에 후회한 적: 당연히 수없이 많다. 작게는 며칠 전 <이슈가르드 부흥용 복권>에서 1등상 바로 옆 칸을 긁었던 것부터, 크게는 잃지 않아도 되었을 목숨들을 잃어버린 것까지. 지난 일 년 간 가장 후회되는 일은 홀민스터 진압 작전*에 알리제를 데려갔던 것. 해당 작전에 얽힌 사연을 묻자 그는 턱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친구를 베는 일은 괴롭지.”  

(*역시 알데나드 바깥에서 있었던 임무로 추정.)

 

38. 자신의 최종 목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제국을 저지하여 에오르제아에 긴 평화를 가져오는 것. 당장은 그 이상을 생각하기 어렵다. 전쟁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는 아이들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순적이지만, 피할 수 없는 희생이라면 외면하기보다 어떻게든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겠다. 멀쩡한 몸으로 살아남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목표다.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는 것과, 목숨을 포기해야만 비로소 성립하는 무모함은 다르지 않은가.

 

39. 가장 자주 가는 여관: 림사 로민사의 여관 뒷돛대. 주점과 인접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 것 같다.

 

40. 가장 자주 가는 주점: 그는 좋아하는 주점과 주점별 시그니쳐 음료를 자랑하듯 늘어놓았다. 일곱 번째 낙원의 보리 맥주, 버스카론 맘대로의 증류주, 물에 빠진 돌고래 주점의 물 탄 맥주, 헤매는 계단 식당의 특제 와인.

 

41. 자신의 주량: 이어서 정확한 주량을 묻자, 그는 주당이라 알려진 것과 달리 술을 잘하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술버릇이 있는 편이고, 만일의 사태를 막기 위해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는 일은 적다. 평상시의 주량은 휴런 남성의 평균을 조금 웃도는 정도라고.


42. 좋아하는/좋아하던 동료: ‘새벽’ 전원을 포함, 뜻을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종족과 신분에 무관하게 동료라고 생각하고 좋아한다… 만은, 특별히 좋아하는 동료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살짝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뒤쪽 테이블을 힐끔거리며 이례적으로 귓바퀴를 붉혔다. 아무래도 테라스처럼 열린 공간에서는 대답하기 곤란한 주제였던 모양이다.

 

43. 친해지고 싶은 동료: 최근에는 ‘새벽’의 신규 구성원과 친분을 쌓는 중이라고 한다. 신입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자, 그는 직접 대담을 잡으라며 두 테이블 뒤에서 취재를 방청 중이던 붉은 머리의 미코테족 청년을 가리켰다.

 

44. 기억에 남는 동료: 나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료, 다음 이야기의 끝에서도 함께 그 꽃을 보고 싶다.” 그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기고 웃었다. 추가 설명을 요구하자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 신호를 보면 더 캐묻지 않는다는 것이 취재 요청을 수락할 당시 그가 내건 유일한 조건이었다.

 

45. 말버릇이 있다면?: 상황이 곤란해지면 이런 식으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 요즘 들어 고치려고 하고 있다.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듯하다.

 

46. 생각을/몸이 먼저?: 몸이 먼저. 전투 중 그의 도움을 받은 부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그의 움직임은 거진 본능에 가까워 보였다고 한다. 그건 누가 보아도 이성이 개입한 속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47. 좋아하는 음식은 먼저/나중에: 좋아하는 음식 먼저. 음식을 급하게 먹는 습관이 있다. 주위에서는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라 염려하기는 하나, 워낙 대식가인 탓에 음식을 빠르게 먹지 않으면 남들과 식사 속도를 맞출 수 없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48. 임무에 실패하게 된다면?: “첫째, 우선 그럴 일이 없도록 하겠다. ……벌써부터 최악을 상정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말해도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는 않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 되었다. 내 실패는 이 땅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낳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해내는 수밖에 없지 않나. 이 별에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각오는 마땅히 되어 있다.

  그렇지만 둘째, 만에 하나 내가 무너지더라도, 나와 함께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세기를 넘어서는 시간이 걸리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모두가 한 줌 아스라한 희망을 위해 진군을 멈추지 않겠지.

  나보다는 그들을 믿어달라고 하고 싶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있고, 내일 더 먼 곳까지 나아갈 기회를 얻었다. 나는 무적도 불사신도 아니다. 자신 있게 말하곤 있지만 지금껏 많은 실패를 겪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내 곁에 선 이들의 의지만은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을 줄 안다. 그 의지가 함께하는 한, 나 역시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사지가 부러지고 신경이 마비된다한들, 숨이 역류하고 핏줄이 끊어진다한들 무너지지 않겠다. 그렇게 함께일 때 우리는 무적이 되어 비로소 어떤 재앙에든 대적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작성해 온 출사표의 초안을 읽는 내내, 마치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듯 보였다.

 

49.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 평판을 일일이 의식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는 조금 더 모범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대외에 나설 일이 많고, 과분한 기대를 받고 있는 이상 나를 지켜보는 아이들의 롤 모델이 되어주고 싶다.

 

50. 동료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수고했다는 말.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여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무엇보다 기쁘다. 사실 내용은 아무래도 좋은 것 같다. 어떤 말이든 살아있는 동료의 목소리이기만 하다면 그걸로 족하다. 심지어는 원망이 담긴 말일지라도 그게 생에서 비롯된 원망이라면 기쁘게 들릴 듯하다. 살아있기만 하다면, 화해는 그 다음을 기약하면 되니까.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마친 그는 미지근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사 기대하고 있을게요.”

  “예? 아…… 영웅님도요.”

 

  내밀어진 손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취재원은 삼 초 간의 정적 끝에 악수를 받았다. 좋은 글감 감사합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든 다음 그는 취재일지의 마지막 장에 몇 문장을 더 추가했다. 설마 영웅 쪽에서 먼저 악수를 청할 줄은 몰랐다는 듯 허둥지둥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밥때를 넘긴 영웅의 배에서는 천둥 치듯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고, 콰르르, 회관을 무너트릴 기세로 울리는 소리에 취재원은 기록을 정리하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제가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네요! 초고는 조만간 자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취재원은 테라스와 회관을 잇는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빛의 전사에게, 뒷자리에 앉아 있던 그라하 티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수고했어. 네가 이런 취재에 응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 싫지 않았던 거야? 사생활이 퍼질 텐데…….”

  “싫기는 싫지. 원래 거절할 생각이었어. 괜히 주변 녀석들한테 위협이 될 수도 있고, 다들 아는 척 굴면 피곤한 일만 늘어나니까. 그런데…….”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빛의 전사가 한없이 풀어지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잖아. 네 생각이 나서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

 

  뒷머리를 문지르는 영웅의 표정이 낯설었다. 하긴 수백 년 후의 미래에서도 이런 기록을 본 기억은 없었다. 영웅은 담대한 배짱과는 별개로 내성적인 구석이 있었고, 사생활을 대중 앞에 드러내기를 꺼려했으니까.

  그러니 이 ‘기록’은 이번 세계선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 보아야 했다. 그라하 티아는 역사가 새겨지는 순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기뻐하며 꼬리를 부풀렸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오늘의 기록을 읽고 희망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대답(비록 그것이 그의 완전한 진심이 아니라 하더라도)은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조차 틀림없는 웃음과 충격을 줄 테지. 거기 감화된 이들 중 누군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먼 길을 돌아서라도 그의 곁에 함께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될 것이다.

 

  “……응, 그거 영광인걸!”

 

  그때는 완연하게 선배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대담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그라하 티아는 영웅의 팔을 잡아끌었다. 다음 모험에 나서기 전까지, 하루 정도는 그가 원하는 만큼 느긋한 식사를 즐기게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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