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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원점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존재로 돌아간 당신과 인간이 된 동료.
 
잠깐의 소나기가 내렸다는 듯 가라앉은 잿빛 하늘, 잿빛 도시에 떨어지는 눈.
 
회색 도시, 눈보라, 겨울,
 
크리쳐인 나와 인간인 너.
 
살아갈 너.
 
그리고...
 
그리고...
 
...
 
죽어가는... 나?
 
분명 잘게 가루가 되어 도시의 너머로 흩날리고 있었을 텐데도.
 
당신은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어깨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장 따위가 아닌, 뜨거운 숨결을 토해냅니다.
 
박살이 났던 몸의 조각들은 제자리를 찾아 알아서 조립됩니다.
 
간신히 제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요란한 색의 조명이 눈을 찌릅니다.
 
당신은 눈밭이 아닌 번화가 한복판에 누워 있었습니다.
 
"괜찮으세요?"
 
누군가가 말을 걸지만, 그 얼굴은 두 겹, 세 겹으로 겹쳐집니다.
 
기다려보세요. 몸도 퍼즐이 완성된 것마냥 금세 붙었는데 ‘시각’이라고 차차 돌아오지 않겠어요?
 
하늘을 나는 승용차가 빠르게 그 옆을 스쳐 지나가고,
 
드론이 거리 한복판에 정신없이 신문을 배부합니다.
 
가장 높은 건물 꼭대기에 걸린 전광판에 그라하 티아의 얼굴이 걸려 있습니다.
 
당신의 파트너라고 여기기엔 분위기가 색다르던가요?
 
아마도 그가 입고 있는 특이한 복장 때문일지도 모르죠.
 
그 사이에 눈을 많이 맞았는지 머리 끝이 새하얗게 세어 있는 점도 원인일 수 있고요.
 
어쨌거나, 그는 왼쪽 눈에 안대를 차고, 달라붙는 검은 코트를 입은 채 느슨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크리쳐 사태의 종식, 그리고 100년의 세월...
 
이번에도 단순한 일이 벌어지지만은 않으리라는 건 알 수 있겠군요.
 
-
 
세카
 
...

 
안경을 쓴 남성: 저기요, 괜찮으세요? 저기요?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안경을 쓴 남성: 이거 보이세요? 몇 개인지 보이세요?
 
이런, 너무 얼빠져 있었네요.
 
너무 터무니없는 상황이라 잠깐 넋을 놓고 있었더니…….
 
눈앞의 사람은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메테오:세 개... 아닌가, 네 개 같기도 하고.......
(인상을 구긴 채로 고개를 틀었다. 숨이 달리는 느낌... 은 아니고, 짧게 심호흡을 했다. 목에 공기가 걸리는 느낌에 잔기침을 한다.)
당신은... 재미있게 생겼네. 알이 네 개인 안경이라니....
 
안경을 쓴 남성: 역시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렸네. 이봐요, 이런 데에 드러누워 있다간 입 돌아가요.
그 머리털도... 좀 어떻게 해 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쑥덕거리잖아요. 도움 준 사람한테 곤혹 주기 싫으면 우선 일어나지 그래요?
 
메테오:......머리털? (느린 동작으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팔다리는 말을 듣는군.)
(눈을 가늘게 뜬 채 뒷머리를 쓸어본다.) 쑥덕거린다니, 내 머리는 원래 이래. 그보다 제정신이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일으켜 줘서 고맙다.
날 보고 쑥덕거리는 게 아니라 네 안경을 보고 그러는 것 같은데? 안경알을 네 개나... (몸을 한쪽으로 휘청거린다.) ...윽, 쓰고 다니니까 그렇지.
 
안경을 쓴 남성: 네, 네. 안경알이 네 개든 여덟 개든 간에, 전 그냥 도시 한복판에 기절해 있던 사람을 구조한 것뿐이죠. 모범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제 막 크리스마스라고 술이라도 하신 거예요?
 
메테오:도시 한복판에 기절...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순간 사고를 비집고 두통이 밀려든다. 누가 잘라내기라도 했나, 드문드문 끊겨나간 기억 속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서너 개로 겹쳤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시야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점멸한다. 붉은 머리털. 목이 쉬도록 무언가를 외치던 녀석. 그 기억을 끝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손을 들어 몸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분명 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작별하는 순간에는 제법 후련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눈을 감았다 뜬 것뿐인데, 이 별세계는 다 뭐고, 그라하 티아는 왜 광고판에 걸려 있는 것이며, 이 남자는 왜 안경알을 네 개나 쓰고 다니는 거야?)
술은... 안 했어.
(남자의 안경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알이 두 개로 바뀌어 보인다. 마법인가? 짧게 감탄했다.)
 
흐릿하던 눈앞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자신의 형편 또한 시야에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고된 전투의 친구인 군복은 낡아 바래져 있고,
 
머리카락을 만져보면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습니다.
 
그러나 몸 곳곳에 남아 있던 상처는 말끔히 사라졌군요.
 
그 이유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안경을 쓴 남성: 조심하세요. 수정공님이 말씀하시길 연말이 되면 사고가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늘 이때가 되면 시민들에게 주의를 주시죠.
그런데 내가 직접 그 광경을 목격하다니! 조금 황당한 방식이었지만요. 수정공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초코바가 생겨요.
 
메테오:(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몸과 엉망이 된 군복이라면... 소생을 했단 말인데. 크리쳐의 힘을 휘둘렀으니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주변까지 이렇게 되어버린 건 이상하지 않나. 어색하게 턱을 매만진다. 남자의 말을 듣다 말고 팍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 초코바?
 
안경을 쓴 남성: ... ...말이 그렇다는 거죠.
 
메테오:...됐어. 별로 기대 안 했으니까.
(...투덜거리다 말고 몸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어떻게 된 건지는 이 남자도 모르는 것 같고, 눈이 오는 데다 조만간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걸 보면 연말이긴 한 모양이었다.)
(또렷해진 시야로 주위를 찬찬히 돌아본다. 돌아가던 고개가 전광판에 이르러 못박힌다. 별 수 없나.) ...초코바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이곳이 어디고, 뭘 하는 곳인지, 저 위에서 폼 잡고 있는 녀석은 왜 저러고 있는지, AOC는 어떻게 됐는지. 그쪽이 아는 만큼 알려줘. 기왕이면 오늘 날짜도.
 
안경을 쓴 남성: 어디... 허리케인이라도 만나셨나? 음, 농담하시는 건가요?
여쭤보시니 대답은 할게요. 중앙관리체제가 있는 안전지대의 중심부잖아요. 제일 번화가에 있으면서 왜 그러세요?
수정공께서 AOC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표하신 게 제가 태어나기도 전 일인데요.
 
행인은 휴대용 전자기기를 꺼내 연도와 날짜를 당신에게 직접 보여줍니다.
 
오늘은 당신이 죽은 날로부터 정확히 100년 후입니다.
 
안경을 쓴 남성: 정신없이 도시 생활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크리스마스는 되돌아오는 법이죠. 음, 나중에 애가 생기면 산타 노릇을 해 보는 게 로망이랄까.
 
메테오:뭐야......? (세기가 통째로 바뀌어 버린... 12월 24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숨을 들이켠다.)
그, 잠깐, 이상한데... ...AOC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게다가 여기가 안전지대의 중심부라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도시의 중심부는 엉망이었지. 멸망의 전조와 폭주하는 크리쳐로 반파된 AOC 건물, 피난하는 시민들로 어질러진 거리... 겨우 며칠을 들여 복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설마. 전광판 방향을 노려보았다.)
사이에 빠트린 질문에도 대답해 줘. 저 위의 저 녀석은 왜 저러고 있지?
 
안경을 쓴 남성: 요즈음 유행하는 신종 조크인가? ...어라, 진심으로 묻는 거예요?
...‘수정공’ 님을 모르신다고요?
 
행인의 눈에 순간 당신을 의심하는 빛이 스쳐 지나갑니다.
 
메테오:......알아야 하나?
 
안경을 쓴 남성: 알다 마다요.
거리 한복판에서 정신을 못 차린다 싶더니만. 안전지대의 관리자시잖아요.
질문에 대답을 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보일 지경이네.
꼭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마냥 구는 것을 보아하니... ...알겠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행사라도 열고 있는 거구나! 어디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눈 감고 딱 한 시간 낮잠 잤더니 차원 이동을 한 사람을 조우했을 때 시민은 무슨 반응을 보이는가?!> 특집으로 제 반응을 관찰하고 있는 거죠?
송출하는 건 좋은데 기본 예의로 초상권은 물어봐주세요. 재밌게 사시네.
 
메테오:저게, 그... 수정공이라고? 이번에는 그런 이름을 쓰는 건가?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이어지는 농담은 반쯤 무시했다.)
특이한 이름을 붙이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긴 했지만... ...저런 무게감 있는 자리에는 안 어울릴 텐데.
이봐, 조금만 더 도와줘. 저 녀석을... 그라하 티아를 만나야겠어. 어디로 가야 하지?
 
안경을 쓴 남성: 이것 참, 곤란한 분이시네...
 
남자가 팔짱을 낀 손을 풀고 시계를 확인할 때였습니다.
 
휘잉,
 
후두둑!
 
기계음을 내며 바쁘게 날아가는 드론이 가십 기사 따위를 흩날립니다.
 
엉망진창이었던 머리칼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든 종잇장을 바라보면,
 
《초절정 미인의 신입 아이돌 마샤, 실은 초절정 프로 탐정 나슈와 친자매였다?!》
 
《함바그가 감기에 좋다는 논문이 발견되다.》
 
《미소의 힘, 평화의 힘.》
 
《끝나지 않는 겨울... ...붕어빵》
 
100년이 지나더라도 꽤 흥미롭게 보이는 홍보물은 대충 넘기고...
 
《안전지대의 관리자 수정공, 행정법 개정안 발표》
 
《안전지대의 관리자 수정공, A 사건 판결》
 
...
 
《안전지대의 관리자 수정공, Z 사건 판결》
 
거... 거기까지 전부 다 직접?
 
기본적인 정치를 비롯해 법 제정과 재판까지,
 
전부 다 ‘수정공’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군요.
 
안경을 쓴 남성: 수정공은 안전지대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고 계셔서 굉장히 바쁘실 거예요.
모두의 존경을 받을 만한 훌륭한 인물이죠.
 
행인은 자세히 덧붙입니다.
 
안경을 쓴 남성: 그를 만나기 위한 도움을 줄 게 없을 뿐더러... 이만 가봐야겠어요.
오늘은 죽은 아내가 돌아오는 날이거든요
 
메테오:(어지러운 머리를 감싸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라하 티아가... 혹은 녀석을 닮은 누군가가, 이 도시를 손수 관리하고 있고,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으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라.)
(초등학교 과학 상상화에도 안 나올 법한 이야기군. 행인을 향해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할로윈이잖아.
...아무튼 설명 고맙다. 바쁘다고 하면 이쪽에서 사정을 말할게. 만날 수 있을 만한 곳을 알려줘.
 
안경을 쓴 남성: 그렇게 치면 365일이 할로윈인 법이네요.
안전지대의 사람들은 죽지를 않으니까요. 그쵸?
아내의 장례를 치른 지도 벌써 1년이 되었으니 어서 만나러 가고 싶어요. 아 참. 정말로 당신이 수정공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가리킵니다.
 
아, 저곳은…….
 
AOC의 건물과 매우 똑닮아 있습니다.
 
행인이 손을 거두며 작게 중얼거립니다.
 
안경을 쓴 남성: ...수정공의 뭐라도 되시나?
 
메테오:글쎄. (낯익은 외형의 빌딩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저게 반가워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죽은 남편이 돌아왔다고 해 두자.
일이 해결되면 다시 인사하러 올게. 그쪽도 무사히 아내를 만났으면 좋겠네.
 
안경을 쓴 남성: 그래요. 다시 만날 수 있다면요.
시체를 관리자에게 보내 두었으니, 무사히 아내는 돌아올 거예요. 당연한 얘기지만요.
 
행인은 100년동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수정공에 관해선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네요.
 
그야, 이 클리셰 SF 시나리오는 죽은 사람도 돌아오는 세계관이 되어버렸거든요.
 
그는 손목에 붙은 전자시계의 홀로그램을 보며 어딘가로 향합니다.
 
매우 혼란스러울 따름이네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파트너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범죄도, 크리쳐도, 죽음도 없는 세계.
 
100년이 지난 거리의 풍경은 영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상황에,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합니다.
 
대충 얻은 정보를 정리해 보면...
 
[100년 후의 세계]를 입수합니다.
 
100년
 
즉 그런 뜻입니다.
 
수정공... 아니, 그라하 티아는 독재자에 가깝고,
 
조금 많이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100년 후라면 그라하는 어떻게 그때와 똑같은 얼굴인 걸까요?
 
분명 그때, 마지막으로 본 그라하 티아는 분명히…….
 
메테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인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던 피는 눈물과 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죠.
 
땅바닥을 갈퀴처럼 긁어내리던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합니다.
 
메테오:(...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것 같다. 전부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세상은 여전히 나와 녀석에게 원하는 바가 남은 모양이었다. 기억 속 마지막 모습을 회상하는 순간 가슴께가 시큰거렸다. 되찾은 현실은 여전히 불가해하고, 부조리하고, 제멋대로 돌아갈 뿐이지만.)
(그라하 티아가 어떤 모습으로든 이곳에 살아 있다는 사실에는 안도하고 만다. 주위를 맴도는 비행형 로봇들의 모습이 꼭 함께 보았던 영화 속 진부하기 짝이 없던 그것들과 닮았다, 생각하며 발을 뗐다.)
 
AOC로 가는 길, 당신은 새로운 안전지대의 시민들을 봅니다.
 
'안드로이드'의 연인이 된 사람, 수정공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
 
발달된 기술의 힘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수정공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모두가 반드시 행복해지는 꿈을 꾸는 것 같아요.
 
...
 
한층 더 세련된 외관으로 단장한 AOC 건물.
 
그 입구로 진입하면,
 
당연하게도 그 앞을 지키고 선 사람들이 당신을 제지합니다.
 
그라하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이 장애물을 넘어야겠죠!
 
짧은 갈색머리의 경호원: 잠깐. 들어가기 전에 용건을 말해주십시오.
 
메테오:(이곳 입구는 항상 이런 식이지. 습관처럼 총을 장전하려다 잡히는 것이 없자 주춤했다.)
그라하... ...아니, 수정공이라는 녀석을 만나러 왔는데.
빨간 머리에, 눈도 귀도 빨갛고, 한쪽은 파랗고, 음, 말 많고 시끄러운 녀석.
 
한 명의 경호원이 다른 경호원과 귓속말을 나눕니다.
 
메테오:(반응을 살피며 천천히 뒷목을 주무른다. 적대적이지도 않은 경호원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고...)
아마 그쪽에서도 내가 왔다고 하면 좋아할...
...큼, 싫어하지 않을 거야.
 
눈썹이 굵은 경호원: 신원이 불명확한 상태로 그 말을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짧은 갈색머리의 경호원: 죄송합니다만, 그대로 들여보낼 수는 없습니다.
 
메테오:군기 하나는 그대로라 다행이군. (나도 한때는 저런 적이 있었나. 그야 불신과 의심이 AOC의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지. 그 덕에 수없이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품 안을 뒤적이더니 이름과 군번이 적힌 인식표를 꺼내 보였다.)
전 AOC 소속이다. 군번은 남아 있지 않겠지만, 파트너가 찾아왔다고 전해줘. 그렇게 말하면 알 거야.
 
경호원은 짧게 한숨을 내쉽니다.
 
아마도... 여전히 당신을 신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게, 수상쩍은 몰골은 둘째 치고 유별난 의상을 입고 있으니까요.
 
그는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무전을 보냅니다.
 
...
 
눈썹이 굵은 경호원: 불시에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AOC 건물 일대를 수호하고 있던 중, 입구에 신원 불상자가 등장하여... ...
 
...
 
경호원은 마스크 사이로 꽤 놀란 얼굴을 드러냅니다.
 
짧은 갈색머리의 경호원: 왜 그러나. 안 들어도 뻔한데.
 
눈썹이 굵은 경호원: 드, 들어오시랍니다.
 
짧은 갈색머리의 경호원: ...뭐? 정말? 누가?
 
눈썹이 굵은 경호원: 누구긴요.
 
"수정공이요."
 
메테오:(이어지는 대화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거봐, 알 거라고 했잖아.
듣자마자 맨발로 뛰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늦으니까 먼저 자고 있으래도 항상 새벽까지 기다리던 녀석이었거든.......
...이 안으로 가면 되나?
 
눈썹이 굵은 경호원: 예, 올라가십시오. 무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짧은 갈색머리의 경호원: 사, 사실이었나 보군... 하지만 전 AOC 소속이라니, 그 말을 곧이 그대로 믿을 겨를이 없지 않나... ...큭, 아닙니다. 무례를 범했습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은 당신을 들여보냅니다.
 
낡아빠진 군화의 발걸음 소리가 건물 안을 울립니다.
 
...
 
그대로 한쪽 벽면이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당신을 태운 기체는 수정공이 있는 최상층까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높다란 시야, 야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눈발이 흩날리는 창 너머로 푸른 도시가 보였다. 그러고 보면 녀석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는 야경을 좋아했었지.)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AOC의 고층에는 영 좋은 기억이 없다. 하루아침에 세계가 뒤바뀌었고, 세기가 흘렀다는 말을 순순히 믿을 수도 없다. 다만 야경을 수놓는 푸른빛을 보고 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목 아래가 따끔거렸다.)
(그랬지. 둘이서 난간을 밟고 서면, 그 순간만은 우리가 이 도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어.)
 
가장 높은 건물보다도 더 높은 하늘.
 
여전히 회색빛을 띠고 있는 창공만을 바라보면,
 
다시 건물로 시선을 내린 뒤엔 100년 전의 풍경이 그대로 있을 것만 같습니다.
 
파트너를 떠올리다 보니 허공에 떠 있는 검은 상자가 눈에 띕니다.
 
청색 전류가 흐르는 물건은 마치 감시카메라 같습니다.
 
그리고 하릴없이 야경을 감상합니다.
 
복잡한 경로를 따라 드론이 날아다니고...
 
저 기계는 소포를 매달고 부유하는군요!
 
당연한 소리지만, 100년 후의 미래는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네요.
 
띵.
 
복잡한 머릿속을 텅 비게 하는 명쾌한 울림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최상층에 도달한 직후 수행원이 당신을 안내합니다.
 
...

 
최고층의 가장 안쪽 방.
 
소장실이 있던 곳은 이제 그라하 티아가 차지했습니다.
 
문득 영문 모를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릅니다.
 
수행원이 문을 열면,
 
당신은 그라하 티아와 재회합니다.
 
전면 유리창을 향해 돌아선 뒷모습이 낯익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듯 천천히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는, 화면과 똑같이 안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세월은 정말 실감 나지 않습니다.
 
그야, 당신과 그라하 티아는 이렇게나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걸요.
 
새하얘진 머리 끝과 영문 모를 보석 무더기가 그의 몸에 붙어 있긴 하지만...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자리잡을 뿐입니다.
 
메테오:.......
(서툰 미소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세계가 자신을 둘러싸고 거대한 <트루먼 쇼>라도 찍고 있는 게 아니라면, 심지어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장면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사과가 되지 못할 테다.)
(때로는 말로 옮기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그러니 다물고 있으려 했지만, 웃음으로 얼버무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차올라 있었다. 가려지지 않은 눈동자에 시선이 닿는 순간,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마중은 나와줄 줄 알았는데. (느린 걸음으로 다가간다. 변했을 리가 있나.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짓지 않던 표정을 짓는다고 한들 그 곧은 눈빛까지 숨길 수 있는 건 아니지. 정수리가 내려다보이는 거리까지 다가가, 코트에 덮인 몸을 세게 끌어안았다.)
 
메테오:(체중을 완전히 기대고 창가에 엎어지도록 몸을 밀었다. 안은 팔에 힘을 실어 붉은 귀 사이와 이마에 몇 번인가 입을 맞춘다. 밀려나지 않을 만큼 단단히 팔을 세우고 콧잔등과 뺨에 느린 입맞춤을 이어나간다.)
(실외의 추위는 간데없이 열이 올랐다. 기어코 입술에 시선이 닿는다. 삼키듯이 입술을 물었다가 떨어졌다. 예고편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 작별이고 마지막이라면,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더는 감추고 싶지도 않아. 숨기고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지. 그저 지금의 안도감을 말로 다할 수 없을 뿐이다.)
(어깨에 팔을 대면 안을 수 있는 딱 한 뼘의 거리.)
(이곳이 더는 우리가 알던 100년 전의 세계가 아니게 되었음에도, 변함없는 거리가 주는 안도감을.)
 
잠시간의 침묵, 그라하 티아의 표정을 읽기 어렵습니다.
 
그라하 티아:...메테오.
 
그라하는 낮게 당신의 이름을 읊조립니다.
 
감회에 젖은 듯 당신의 팔을 붙잡지만, 여전히 표정을 읽기 어렵습니다.
 
가느다란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이마를 타고 내려오나 싶더니, 검은 안대 위에 안착합니다.
 
그라하 티아:정말 보고 싶었어.
그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 지경이군. 성탄절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은데, 나에게는 전혀 늦지 않은 선물이다. 그래... 조금도.
이번에도 산타가 다녀온 것이라고 얘기해 줄 셈인가. 마중을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
다만 이쪽도 주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었어.
 
메테오:너... (말투까지 어른스러워졌나. 격식을 차리느라 그런 것도 같고.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반응은 아니었을 텐데. 달아오른 얼굴을 장갑 겉등으로 문지르며 헛기침을 했다.)
...아니다, 나도 보고 싶었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물?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어?
 
그라하 티아:(새빨개진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장갑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아내고,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유리창으로부터 등을 떼어냈다. 허리를 꼿꼿이 피고 다시 입을 연다.)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겠군. 우선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하자.
 
메테오:식사... 그래, 지금은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곳 녀석들이 너를 특이한 이름으로 부르던데. 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초코바가 생긴다고... 농담인 것 같았지만. 얼굴의 수정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라하 티아:수정공이라는 칭호를 말하는 건가.
그 말이 맞아. 현재 이곳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안전지대를 통치하는 이를 그 무엇보다 필요로 하지. 보다 삶이 모난 데가 없고 바람직하도록, 슬픔을 느끼는 자들이 소멸하도록.
...아, 이건 말이야.
명예로운 흉터 자국이라고 봐도 좋다. 도시를 밝히던 새파란 불빛과 잘 어울리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그는 당신을 식당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이끕니다.
 
보다 세련되어 보이는 건물의 구조는 익숙합니다.
 
...
 
커다란 공간의 식당, 탁 트인 시야.
 
새하얀 테이블보가 깔린 직사각형 식탁 위로 섬세하게 세공된 은색 식기들이 하나둘 올라갑니다.
 
따뜻한 수프와 바게트, 소스와 아스파라거스가 어우러진 폭립 스테이크와 풍미가 훌륭한 와인까지!
 
접시마다 담긴 음식은 전부 식욕을 돋우는 것들이라,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켜버립니다.
 
그러고 보니 식사를 꽤 굶은 것 같아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라하는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먼저 식사를 시작합니다.
 
그라하 티아:...이만 맞은편에 앉아 주겠나. 그대가 우리에게 건넨 선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니까.
그런 반응도 이해가 되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대는 고기를 좋아했거든.
 
메테오:편하게 불러도 돼. 어색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통치자가 필요하다, 명예로운 흉터 자국이다... 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뿐이군. 고민하다가도 혀 밑으로 침이 고이자 화들짝 입가를 감싼다.)
...그게 헷갈릴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는 말이지. 맞아, 좋아해.
(맞은편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세공된 식기를 들어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함께 지내는 동안에도 이런 호화로운 식사는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붉게 빛나는 폭립을 썰어 살코기의 굵직한 부분을 떼어낸다.) 들려줘. 그동안 이 도시와 내 파트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접시가 가볍게 눌리며 테이블 시트가 약간 구겨집니다.
 
당신의 것은 미디엄 웰던.
 
디너 테이블의 끝과 끝, 확실한 거리감 사이에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라하 티아:어색해 보이더라도 이해해 주게. 그대를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놀랐지만...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게끔 노력을 하고 있어.
도시와 나의 얘기라, 어디서부터 서두를 떼야 할지 모르겠군. 익히 알아차렸겠지만 그대에게는 현재를 먼 미래로 인지해야 할 거다. 그로부터 100년의 시간이 흘렀고... 정말로, 다사다난한 기간이었지.
하지만 본질을 들춰내보자면 실상은 별거가 없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수호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그마저도 그대에게 영향을 받은 탓이었지.
(완전히 절단된 고기와 고기 사이를 칼질한다. 살덩어리를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올려 그를 눈 안에 담는다.) 안심해. 그대가 목숨과 맞바꿔 지킨 안전지대는 내가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그대의 유지를 이어받을 사람이 이쪽이 아니면 또 누가 있나, 하는 자만심 또한 있었고.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굶지 않고, 아무도 외로워하지 않고, 아무도 죄를 범하지 않아. 오로지 나의 통제와 계산으로만 굴러가지.
이게...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그라하 티아:줄곧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메테오:(씹던 살덩이를 이르게 삼키고 눈썹 사이를 좁혔다. 아무도 굶지 않고, 외로워하지 않는 세계라고? 고기를 썰던 나이프가 부자연스럽게 멈춘다. 그런 세상이 겨우 백 년 사이에 가능해질 수 있나?)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네가 도시의 관리자라니, 방 청소도 엉망으로 해 놓고, 툭하면 비디오며 책이며 반납하는 걸 까먹고. 일하러 간 가게에서 장난이랍시고 손님 PC나 꺼 버리고.
그 많은 일감을 감당할 만큼 얌전한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아직 실감은 안 나지만, 너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양이지. 아니, 달라지는 게 당연한가.
(고기를 한 점 더 썰어 입에 가져갔다.) ...그 눈도 명예로운 흉터의 일부인가?
 
그라하 티아:그런 셈이지. (푹, 고깃덩어리에 포크를 찍어 입을 벌린다. 그대로 입안에 넣은 고기를 서너 번 씹어 내용물을 삼켰다.)
혹시라도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이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안대를 착용하고 있었거든. 수십 개월도 모자라, 수십 년이 지난 현재로서는... 그다지 불편함조차 느껴지지 않아.
그보다, 그대도 많이 달라졌더군. (와인 오프너로 코르크 마개를 힘있게 따낸다.)
입을 맞춰올 줄은 몰랐어. (벌어진 병의 입구로부터 포도향이 물씬 올라온다. 시음을 멈추고 그의 잔과, 자신의 잔 일부를 순서대로 채워넣는다. 묵묵하게 와인이 흘러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메테오:나? ...나는 그대로인데. 아마 변한 게 없다고 해도 될걸. (포크를 쥔 손을 쥐었다 펴 본다. 한 세기가 흘렀다기엔 여전한 신체였다. 실감이 나지 않을 뿐.)
......아, 아, 아니, 그건......
(한참 말이 없다. 글라스 너머로 찰랑이는 액체를 묵묵히 노려보았다.)
실수는 아니었어. 놀랐다면, 미안하지만... (그게 진심이니까. 붉어진 고개를 더 들고 있지 못하고 사선으로 돌려버린다. 실은 더 일찍 하고 싶었다, 같은 소리를 이제 와서 할 필요는 없겠지.)
걱정을 안 하기엔 너무 눈에 띄는 위치잖아. (흘러가듯 한숨을 쉬며 잔을 들어 올렸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와인은 건드릴 일이 없었지.)
...다음에 제대로 말해줘. 지금은 그것보다...
 
메테오:(의자에서 일어나 네가 앉은 자리까지 성큼 걸어간다. 추위 탓인지, 어쩌면 시간 탓인지. 굳어버린 어깨에 팔을 얹고, 환한 웃음과 함께 잔을 기울여 보였다.)
건배. 보고 싶었어, 라하.

 
라하, 라는 단어가 당신의 입으로부터 나오면, 그는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그라하 티아:건배.
 
그라하가 잔을 기울이자 명쾌한 소리가 공간을 울립니다.
 
그라하 티아:그대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감사를 표하며.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단숨에 잔을 들이킵니다.
 
메테오:(매끈한 건배사에 짧은 웃음이 터졌다. 아주 어른처럼 말하게 됐군. 들고 있던 잔을 단숨에 바닥까지 비운다. 입가를 닦아내며 눈을 마주쳤다.)
(그래, 아무려면 좋다. 변하든 변하지 않았든. 눈앞의 녀석이 그라하 티아라면.) 아래층 입구에서 경비 중인 녀석들은 포상 휴가라도 보내주는 게 어때?
군기가 바짝 들었던데. 그놈들도 크리스마스에는 쉬고 싶을 거 아냐. 연말이고, 그렇게 하면 우리가 나가기에도 편할 거고, 음, 너한테 그 정도 권한은 있어 보이니까... ...와인 맛있다.
 
그라하 티아:좋은 생각이야. 물론 그들은 본인의 자리를 썩 만족스러워하고, 더 나아가 자랑스러워하지만... 그대의 말처럼 이따금 휴식을 취할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크리스마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거다. 안타깝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원들에게는 안전지대를 수호할 의무가 있거든.
그대여. 그날 그대가 몸소 보여준 숭고한 희생을 직면한 뒤...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런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정의라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선 다소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문득 당신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낍니다.
 
만찬 속 와인의 도수가 높았던가요?
 
화끈거리는 체온, 약간의 구토감.
 
확실한 몸의 이상 신호를 느끼는 가운데 그라하는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라하 티아:메테오. 그대에겐 고마워하고 있어.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휘청,
 
메테오:그게 무슨 소리야, 희생이라니... 너......!
 
말을 내뱉을 때마다 피가 역류하는 것만 같습니다.
 
기울어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파트너의 수프 그릇에 뺨을 처박습니다.
 
새하얀 크림 수프 위로 붉은 포도주가 흐릅니다.
 
아니, 아니죠.
 
이건 당신의 피입니다.
 
눈, 코, 입, 양 귀에서부터 미친 듯이 피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팔도, 다리도, 마치 육체의 주도권을 잃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수정공:그만 좀 찾아와.
100년 전부터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소중한 너’를 죽이는 것도 힘들다고.
 
수정공은 당신이 수프 위에 코를 박거나 의자째로 넘어지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고기를 써는 중입니다.
 
메테오:.......
(이놈의 AOC. 이 빌어먹을 불길한 예감. 어기는 법이 없군.)
(코웃음을 치려 하면 피에 뭉개진 수프에 거품이 일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 어떤 설명도 내어주지 않은 채 앞서가는 사물들. 발버둥을 비웃는 듯한 전개. 세계와 흐름은 언제나 우리에게 불친절했다. 전력으로 달려도 내쳐지기만 할 뿐인, 이 우습지도 않은 세계.)
(그걸 세계관과 클리셰라 해도 좋다면, 처음 불길한 감이 들었을 때 이깟 잔 따위 내던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던 것은 오직 눈앞의 이 녀석이... ...어젯밤 헤어졌던 파트너의 모습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은 어깨의 높이가 그대로였기 때문에.)
 
메테오:(다시 만나고 싶다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끔찍하게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혀뿌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목을 울렸다. 알아 둬. 이토록 불친절한 세계를 상대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이 옆자리에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대로 납득할 수는 없다. 그러니 되찾겠다. 네가 백 년에 걸쳐 쌓아올린 것들을 전부 무너트리는 결과가 된다 하더라도.)
(말을 만들지 못한 소리로 콜록이다,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인 나이프를 하나 주워 들었다.)
(네가 나를 죽이고, 그것을 반복하는 일을 지난 백 년 이어왔다면.)
(그 연쇄를 끊는 것부터 시작하자.)
 
메테오:(움직이지 않는 사지를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렸다. 우습게도 이런 순간에는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더군. 그게 의지라는 거겠지. 들고 있던 나이프를 목의 동맥에 망설임 없이 꽂아 넣는다.)
 
수정공:...
이걸로... 충분해.
 
목으로부터 깊은 통증이 밀려듭니다.
 
당신이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어딘가에 통화를 거는 수정공의 모습입니다.
 
타성에 젖은 그는 당신에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소원
 
살고 싶어.
 
그것이, 당신의 소원이었더라면.
 
다시 한 번 암전.
 
-

 
...
 
당신은 거친 호흡과 함께 눈을 뜹니다.
 
깜빡, 깜빡.
 
이곳은 가정집입니다.
 
커튼 위에는 색색의 싸구려 전구가 당신의 눈꺼풀과 함께 깜빡이며 알록달록한 빛을 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선 B급 클리셰 SF 영화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타이틀은 클리셰 SF세계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속 신나는 멜로디가 방을 작게 채웁니다.
 
이런, 주인공은 악당의 계략에 당해 수프 그릇에 코를 처박고 죽어버렸네요.
 
그라하 티아:뭐야. 그새 잠들었어? 그 영화 재미있는 건데.
 
머그잔에 담긴 코코아를 홀짝이던 그라하 티아가 문턱에 기댄 채 조금 웃습니다.
 
뺨에 남은 시트 자국이 선명합니다.
 
내내 누워있었나 봐요.
 
그라하 티아:슬슬 일어나서 케이크 준비하자. 모처럼의 크리스마스 파티잖아.
계속 늦장 부리다간 늦어버릴 거라고. 녀석들, 벌써 무전을 보냈어. 맛있는 걸 싸들고 오고 있대.
 
메테오:(느리게 눈을 껌벅인다. 시트 자국이 남은 뺨을 보았다가, 다시 정면을 본다. 이상할 정도로 목이 뜨겁고,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숨을 내쉬자 멀쩡하지 않은 소리가 터졌다. 영화는 늘 보던 것처럼 재미가 없었고, 죽어버린 주인공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래? 파티를 하기로 했었나.
(그럼에도... 마치 그 안에서 죽어버린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닌 다른 무엇인 것만 같다.)
(본 적 없는 영화와 계획한 적 없는 파티.)
(늘상 보던 파트너의 잠옷 차림과 둘이 지내기엔 조금 좁은 셋방. 보일러를 틀어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던 외풍.)
 
메테오:(목이 메어 왔다. 보고 있던 TV를 끄고, 문턱에 기댄 너의 미소를 한참 보고 있었다.)
그라하.
볼에... 자국 남았어.
(가서 세수라도 하고 와라, 평소였다면 그렇게 웃어넘겼을 우리지만.)
(일어나 문가로 다가섰다. 익숙하게 일어서는 귀와 꼬리를 보며 적잖은 안도감을 느낀다. 자꾸만 흐려지는 눈앞에 슬쩍 고개를 든다.)
(우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믿음직스러운 파트너이고 싶었어. 답지 않게 미련을 드러내고 싶지도, 네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남기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메테오:(그렇게 각오를 다져 놓고도, 먼 미래에서 바래버린 네 미소를 기억하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작은 품에 무너지듯이 몸을 안겼다.)
(물기 젖은 눈으로 웃음도 울음도 아닌 얼굴을 한다. 아이처럼 우는 소리가 터진 것도 같다. 실은 그 마지막 순간,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건...)
......
 
그라하가 당신의 몸을 끌어안습니다.
 
그라하 티아:그래. 아르봉트랑 레미트를 부르기로 했잖아. ...그리고 볼에 자국 남은 게 한두 번이야? 급한 불부터 끄고 세수하면 될 거 아니야.
울지 마, 크리스마스에는 울면 안 된다고.
하지만... 최강의 요원도 늘 밝은 웃음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지.
 
달래주는 목소리가 잠결처럼 몽롱합니다.
 
꿈을 꿨나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득, 이대로도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라하가 당신의 어깨를 짚으며 머그잔을 내밉니다.
 
그라하 티아:오늘 정도는 쉬어도 괜찮아.
클리셰 영화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으니까.
조금 더 잘래? 인형 꺼내줄게.
 
메테오:아냐, 잠은 푹 잤어. 네가 엄청나게 지루한 영화를 틀어준 덕분에.
(머그잔을 받아든다. 입술 자국이 남은 자리에 그대로 입을 대고 마셨다.)
...오기로 한 녀석들한테 조금만 늦게 와 달라고 해 줘.
보여주기 좀 그렇잖아. 네 시트 자국이든, 내 우는 얼굴이든...
 
그라하 티아:그러지 뭐. 헤헤, 맛있지? 내가 직접 탄 핫초코야. 기분 전환도 할 겸 일부러 달게 만든 거고.
녀석들, 오는 시간을 미루더라도 팅팅 부어버린 네 눈을 보는 건 똑같을 것 같은데.
 
메테오:......그래도 미뤄.
(벽 구석에서 타고 있는 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저렇게 비싼 난로는 난방비가 아까워서 들이지 못했어. 빛을 내는 트리의 장식도, 전기세가 아깝다고 내가 안 된다고 했었지.)
(바닥을 보인 머그잔을 감싸고 가볍게 웃었다. 목에 둘러진 검은 머플러에서는 새 것 같은 냄새가 나고, 아르버트와 라미트의 연락처를 네가 알 리가 없다.)
(그 어떤 클리셰와도 맞지 않는 이야기. 굼뜨게 삼킨 코코아는 자칫 안주하고 싶어질 정도로 단 맛이 났다.)
케이크 준비는 했어?
우리 집에 오븐 없잖아.
 
메테오:...하나 사 오는 게 빠를 것 같은데. 네 요리 실력은 못 미덥기도 하고.
 
그라하 티아:...싫거든, 전자레인지로 만들면 되지. 이럴 때 아니면 케이크를 또 언제 만들어 봐. 자자, 그러지 말고 케이크 만들기 임무에 너도 동참해.
그래도... 시간을 미룬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겠다.
 
미간이 넓고 눈썹이 굵어 멍청해 보이는 곰인형이 품에 들어옵니다.
 
그라하 티아:뽑기 기계에서 꺼낸 이후로 세탁 한 번 안 했더니, 먼지가 좀 묻어 있긴 하지만... 음, 단정해 보이지만은 않는 게 너랑도 닮았네.
이거 가지고 침대에서 쉬고 있어. 추울 테니까 창문은 닫아 두고.
 
메테오:(인형을 받아들고 떨떠름하게 끄덕인다. 전자레인지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겠다니, 어디서부터 잔소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이 방 창틀이 안 맞는다니까. (한 손에 인형을 들고 창가에 다가섰다. 외풍으로 덜걱거리는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창밖을 보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메테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허공에 뜬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익숙한 색깔의 눈알은 청색으로 빛나고 있어요.
 
한참 바라보면 천천히 기억의 파편이 돌아옵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신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라하가 당신의 옷자락을 붙듭니다.
 
그라하 티아:나가지 마, 추워 보이잖아.
조금 더 곁에 있어 줘. 눈 좀 붙여, 메테오.
 
메테오:...계속 자서 안 피곤하다니까. 이런 날에 굽다 만 반죽은 먹고 싶지 않고, 우리 단골인 빵집도 이브까지는 영업한댔어.
나가서 맛있는 걸로 하나 사 올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그라하 티아:하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울었잖아. 지금도 얼굴이 빨개.
 
메테오:영화 보느라 운 거야. (트리 장식을 닮아 이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본다. 잠시 말이 없더니,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네 목에 단단히 매 주었다.)
 
그라하 티아:나 참. 아직도 내가 네 거짓말을 모를 줄 알고.
머플러는... 지금 봐도 예쁘다. 그치만 왜? 나가지 않기로 결정한 거야? 이걸 목에 껴 입고 있어도 얼어버릴 판인데.
그리고 이건 내가 너에게 준 선물이잖아.
 
메테오:옳은 일을 하기 위해선 가끔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잖아.
(정전기로 일어서는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다. 입술을 떨어트리며 익숙한 색의 눈동자를 시야 가득 담았다. 다시 보지 못하게 된다는 건 역시 아쉬울 것 같다.)
(진심으로 좋아했거든. 그 눈에 사소한 장난기가 오르는 순간, 재미없는 TV 영화가 비치는 순간, 생을 향한 의지가 빛나는 순간, 내 모습이 비치는 순간을.)
금방 올게. 올 때는 맥주도 시원한 걸로 같이!
 
...
 
당신의 말을 들은 그라하 티아는 소파 옆자리에 앉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잠기듯 기댄 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읊조립니다.
 
그라하 티아:후회할 텐데.
아주 많이 아플 거고, 아주 많이 괴로워질 거야.
모두를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삶은 더 이상 지겨울 법도 해.
그 과정이 근사하고, 빛이 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너도 알잖아. 최강의 요원은, 늘 밝은 웃음을 유지할 수는 없어.
이제 도망쳐도 돼. 쉬어도 되는 거야.
 
그라하 티아:어차피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 따위는 멀어진 지 오래니까...
...
메테오.
이제, 넌 뭘 위해서 싸우는 거야?
 
메테오:(옆자리의 이마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러게, 싸워야 할 이유를 찾으라면 망설이게 되겠지.)
(싸움의 끝에는 작별과 비극뿐이다. 이제 와서 그걸 반복할 마음은 들지 않아. 다만...)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어.
행복이 뭐, 별거 있나. 삶을 원하는 이들이 평범하고 무사하게 내일을 맞는 것. 그 정도는 내 힘으로 해 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의였고, 우리 역할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짜리 성공인 것 같아.
이유를 고민해 봤는데. 아마도 우리는 혼자서는 완벽해질 수 없다는 거겠지. 그때는 결과를 고민할 여유가 없어서 몸부터 던지고 봤지만.
 
메테오:막상 눈을 뜨고 보니 가장 구하고 싶었던 사람이 엉망이 되어 있더군.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에는... 눈앞의 한 명 정도는 제대로 구해내고 싶다.
그걸 위해서 가는 거야.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글쎄, 울 수도 있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지금처럼 달래줄 테니까.
 
"그렇구나."
 
100년 후, 크리쳐는 사라졌지만, 세계는 이전보다도 기이해졌습니다.
 
파트너는 이상해졌고, 기억은 여전히 엉망진창입니다.
 
소중했던 건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이제껏 잘 싸워주었어요.
 
이곳에서 포기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여전히 남은 것이 존재한다면.
 
설령 이것이 영웅의 말로라고 해도,
 
여전히 남은 것이 존재한다면.
 
여전히... 의미를 느끼고 있다면.
 
...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잘 대답했다면,
 
실내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집니다.
 
문 앞의 조명을 제외하고요.
 
소파에 앉은 그라하 티아는 당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오롯이 당신 혼자만의 싸움입니다.
 
메테오:(조명이 꺼지는 순간 팍 웃음을 터뜨렸다. 지나치게 작위적이지 않나. 이래서야 눈치를 못 챌래도 못 챌 수가 없겠군.)
(어두운 방 안, 소파에 앉은 뒤통수를 노려보며 작은 소리로 벙긋거린다.)
그걸로 보고 있어. 심심하면 응원도 해 주고.
(시간이 흐르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변해 간다 해도, 너만은 그대로일 줄 알았다. 변함없기를 기대했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아침 메뉴를 두고 다투거나, 별난 짓거리로 투정하던 나날들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이 세계가 그렇게 친절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 정도는 편하게 일이 풀리지 않을까 싶었어.)
(그만큼이나 네게 못할 짓을 해 버렸다는 거겠지. 이제 와서는 사과도 통하지 않을 줄 안다.)
(녀석에게는... 크리쳐가 떼거지로 날뛰는 세상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지. 붉은 뒤통수를 한참 더 바라본다. 망설임이 남은 손으로 문고리를 쥐었다.)
 
현관문은 오늘따라 단단하고 굳게 잠겨 있지만,
 
당신이 손잡이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쉽게 열립니다.
 
메테오:
듣기
기준치: 75/37/15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발이 휘날리는 밖으로,
 
당신의 첫 발자국이 남겨지면,
 
그라하 티아:잘 다녀와.
 
귓가에 꿈결같은 목소리가 들린 듯도 합니다.
 
...

 
...
 
이번에야말로 거센 기침과 함께 눈을 뜹니다.
 
시야가 어둡고, 여긴 정말…….
 
엄청나게 춥네요!
 
누워있는 바닥은 이상하게 불편하며, 퀴퀴한 냄새까지 납니다.
어둠에 양 눈이 익숙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점차 형태가 뚜렷해지더라도 여전히 팔다리가 무거워 마음껏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메테오:
건강
기준치: 99/49/19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삐그덕.
 
간신히 고개를 돌린 당신은 낯선 얼굴과 두 눈이 마주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얼굴입니다.
 
창백하고 전혀 생기가 없지만!
 
이건... 시체 아닌가요?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8/34/13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감소합니다.
 
설마 지금 시체 무더기 위에 누워 있던 건가요?
 
어둠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하게도 시체는 전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씨름하던 그때, 팟!
 
소리와 함께 손전등 같은 조명이 켜집니다.
 
작은 조명을 든 사람은 무언가를 찾는 듯 시체 더미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조명등에 비추어 보아, 방금 날아간 한짝은 타인의 팔인 것 같군요.
 
...인기척을 죽이는 게 좋을까요?
 
메테오:(자유롭지 않은 사지를 끌고 조명을 피해 시체 더미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시체를 보는 건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다량으로 모여 있는 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사람들을 헤집어대는 소리, 그리고 조명이 딸깍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시체들을 벽으로 삼아 숨을 죽이고 있으면...
 
그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가운 손이 당신의 어깨를 붙들고야 맙니다.
 
눈이 부셔 조명등을 든 인물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메테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낯익은 이목구비는 분명히……
 
라미트...?
 
메테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그때와 똑같은 연령대와 얼굴입니다.
 
LAMITT:여기에 있었네.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상대는 다급하게 당신이 입은 군복의 소매를 걷어냅니다.
 
그리고 주삿바늘을 쑤셔 넣습니다.
 
저항할 힘도 없는데 말이죠!
 
메테오:......라미트?
(넋을 뺀 채 손목을 내어주다가, 바닥에서 뜯겨 나간 팔을 하나 집어들었다. 휘둘러 저항하려다가도 손에 힘이 빠져나가며 들고 있던 것을 놓친다.)
이건, 또... 무슨 짓이야.
 
바람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LAMITT:가만히 좀 있어 줄래? 구석에 숨은 것도 모자라, 얌전하게 자리 잡지를 않으니까 방해가 되잖아!
당혹스러운 건 알겠는데 조금만 참아. 알잖아, 나는 줄곧 당신의 편이었다는 걸.
 
혈관을 타고 알 수 없는 물질이 안쪽으로 들어오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라미트는 바늘을 뽑아냅니다.
 
LAMITT:도움을 주러 온 사람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메테오:도움을 주러 온 건지 확인사살을 하러 온 건지 어떻게 알아?
(인상을 구긴 채 바늘자국이 남은 자리를 본다. 그나마 통증은 없는 것 같지만...)
 
그제야 라미트가 악의가 없음을 증명하듯 양 손바닥을 들어 보입니다.
 
...
 
뻣뻣하던 당신의 몸에 금세 힘이 돌아옵니다.
 
아마도, 주사기를 놓았던 약효가 도는 것 같습니다.
 
LAMITT:...휴. 보아하니 상태가 완화되고 있나 보네. 응, 맞아. 그건 해독제야.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몸소 찾으러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조명 빛에 의지해 현재 있는 곳을 확인해본다면, 이곳은 산더미 같은 시체의 산입니다.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8/34/13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합니다.
 
메테오:(헛숨을 켜며 상체를 비틀거렸다. 조금 전 시체와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꺼림칙하다 싶었는데, 정말로 시체 취급을 당한 모양이다.)
(혈색이 돌기 시작한 팔 안쪽과 라미트를 번갈아 본다.) ...고마워. 번번이 신세를 지는군.
(체감하기로는 겨우 몇 분 전까지만 했어도 따뜻한 실내에서 파트너와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나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차게 식은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LAMITT:(그가 몸을 휘청일 때마다 비스듬히 내려오는 팔을 부축해 준다.) 역시, 예상한 대로 몸에 크게 드러나는 상해는 없어 보이고... ...그리고 당연하지만 꽤 당혹스러워 보이네. 맞지?
사실은 그렇게 고마워할 것도 없어. 난 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려고 시체를 관리하는 지하까지 내려온 거니까. ...이해타산적인 사람처럼 보인다면 미안하지만, 이쪽도 다른 방안이 없어서.
 
메테오:당연히 당황스럽지. 눈 감고 딱 한 시간 낮잠 잤더니 백 년을 이동해 있어 봐라. 세상이 작정하고 나를 놀리기라도 하나, 싶어.
(애써 웃음을 보이며 자세를 고쳐 섰다.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군.) ...그래도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게. 너희에겐... 라미트에겐 받은 게 많으니까.
...라미트, 맞나?
 
LAMITT:그래, 당신은 이곳에 쌓인 시체들과는 다르게 특수한 케이스였지...
낮잠을 통한 시간여행이라. 당신다운 재치 있는 표현이네. ...부탁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참고할 점들을 알려주는 게 낫겠어. 보호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백화점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다루듯 얘기해 줄게.
 
메테오:...그, 내가 만든 표현은 아니야. 백화점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애도 아니고, 보호자를 잃어버리지도... ... ...아무튼.
 
LAMITT:아르버트도 이 말을 들으면 너처럼 쑥스러워하고는 했지. 그런 모습이 꼭 빼닮았다는 의미인데도 말이야!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게. 좀 더 농담을 주고받고 싶어도... 보다시피 지하실에 몰래 기어들어올 만큼 한시가 급해서.
먼저 사람들의 시체가 왜 한 곳에 모여 있는지 궁금할 거야.
이 사람들... 아니, 그들은... 폐기된 안드로이드야. 이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지.
 
메테오:쑥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안드로이드라고? 이렇게 사람처럼 생겼는데?
 
LAMITT:먼 옛날로부터 거슬러 온 너라면 이렇게 생각하려나. 안드로이드란 쇳덩이로 이루어지고, 기계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어 깡철 소리를 낸다던가.
그때는 그런 재미있는 상상을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얘기야. 안드로이드란 인간들처럼 피와 살덩이를 완벽히 갖추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가늠이 잡히지? 나 역시 안드로이드야.
이쪽은 ‘살아있는 라미트’가 아니라, 그저... 입력해둔 데이터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지.
지금의 안전지대는 사람이 죽으면 1년 후에 특별한 일을 가지고는 해.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도록 시체를 관리자에게 보내는 것. 그걸 장례라고 불러.
 
메테오:(턱을 쥔 채 생각에 잠겼다. 안드로이드에게 피와 살을 부여해서 죽은 인간의 대용품으로 삼았다는 건가?)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기술이라면 황당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계가 되었다는 건 그런 의미였나.)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과거에서 왔다는 말도, 보통이라면 믿지 않을 텐데.
 
LAMITT:100년 전, 나는 당신과 함께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어.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살아 있는 크리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
그러니 소생을 마친 당신이 이곳에 있을 거라 짐작했는데, 이렇게 조우하게 돼서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드는 것 같아...
...아, 그래. 아르버트도 마찬가지야. 그는 당신과 같은 크리쳐였기에 전투 이후 홀로 남게 되었거든.
내가 지금 이곳에 이렇게 존재하는 건... 아르버트가 간곡히 원했기 때문이야.
수정공은 아르버트의 소원대로 나를 되살렸지만, 아르버트는... ... ...그는.
그는 내가 살아났기 때문에 더 불행해졌어...! 나를 도와줘!
 
메테오:...너도 그날 죽었다고...
(소리가 울리도록 이를 갈았다. 그날 있었던 일들은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고,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자리의 모두가 살아남기를 바랐는데.)
(이래서야 반쪽짜리 성공이라고도 못 하겠군. 난감한 기색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든다.)
우선 여기서 나가자.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널 데리고 있기엔 마땅한 장소가 아니군.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말해줘.
(라미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데이터를 받아 움직인다고는 해도... 살아 있는 안드로이드와 함께 안드로이드 폐기장에 머물고 싶지는 않다.)
 
LAMITT:미안해, 침착하지 못해서. 그리고... 정말 고마워. (그의 위로에 입꼬리를 올려 살포시 웃어 보인다. 그러나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문을 이어나갔다.) 나는 함께 갈 수 없어.
나는 나의 존재가 라미트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를 소중히 여기게 되어있기 때문에, 아르버트가 더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과정에서 네가 꼭 필요해. 왜냐하면 너는 '살아있는 자'잖아.
 
라미트가 문 쪽으로 턱짓합니다.
 
LAMITT:그리고 이건 나만의 의견이 아니야.
 
라미트 외에도 세상을 떠나지 못한 망자들이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군요.
 
LAMITT: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는 것만으로도 과거에 사는 우리는 죽을 수 있어. 산 자들에겐 미래가 생기는 거야.
 
메테오:(떠도는 말을 듣던 중 문 방향을 돌아본다. 이 폐기장에는... '라미트'와 같은 안드로이드가 산적해 있는 건가?)
...아르버트는 어떻게 된 건데? 그라하가... ...수정공이 녀석의 소원을 들어줬다면서.
 
LAMITT:맞아, 관리자는 늘 그랬듯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만들어주었거든.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어. 그는... 나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쪽은 프로그래밍된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100년 전 사망했던 그녀와는 본질이 다르니까. 실은 아르버트도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줄곧, 그가 나를 마주할 때면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라미트와의 재회는 그가 원했던 건데도, 꼭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듯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나는... ... ...
...난 그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깨달았어.
너라면 이해할 거라 생각해! 너도 수정공, 아니, 그라하 티아에 대해 애를 태우고 있을 거 아니야? 내 말이 맞지?
 
메테오:글쎄, 나는 누구처럼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인간에게 그만한 본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 녀석이 널 보면서 이전의 라미트를 떠올릴 뿐이라면... 그리고 그 곁에서 네가 힘들었다면. 그런 짓을 이어갈 이유는 없겠지.
그라하가 내 속을 썩이는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야. 그건 익숙하니까 괜찮지만, 그게 너희 문제와 상관이 있나?
 
LAMITT:말하자면 조금 길지만, 네 동료 그라하 티아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100년 동안 안전지대, 그리고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메테오:그래, 아직도 그 설명을 못 들었어. ...하물며 본인한테서도.
 
LAMITT:당신이 사망한 이후 수정공... 그라하도 안전지대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잘되지 않았었어.
그 직후에 크리쳐도 아닌 인간들에 의해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거든.
그때부터였어. 수정공, 아니, 그라하 티아가 이상해진 건.
너의 마지막을 기억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였는데도... 듣고 놀라지 마.
그 애는 스스로 안전지대의 관리자를 자처하더니 반대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숙청해버렸으니까.
...네 파트너를 욕보이려는 게 아니야. 무언가가 이상해. 예전부터 쭉, 지금의 그라하는 꼭 그가 아닌 것 같아.
 
LAMITT:그라하 말이지, 자세한 건 나 역시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 그날 이후로 이상한 힘을 얻은 것처럼 보이거든.
 
메테오:사람들을 숙청했다고? (팍, 인상을 구기고 되묻는다. 그럴 리가 없다. 그라하 티아는 뜻이 고작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녀석은 아니야. 가끔 고집을 피우거나 단호해질 때가 있기는 했어도, 누군가를 죽일 정도로는...)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못 알아듣겠어. 그라하가 왜 그런 짓을 해?
 
LAMITT:이해가 안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다만 모두가 훌륭함을 기리는 수정공에게서 기시감이 느껴질 뿐이야.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안전지대도 단 하루만에 수복되었어.
도시가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던 건... 시민들은 모두 ‘수정공’ 덕분이라고 그래.
처음에는 죽은 사람을 안드로이드로 만드는 기술 따위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 또한 선망 받는 수정공이 이룩해낸 결과래.
 
메테오:(역시 혼자 해 낸 일이 아니었던 건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떨궜다.)
......만나서 다시 물어봐야겠군. 내가 뭘 하면 되지?
 
LAMITT:내 부탁은... 단순히 지금의 나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안 돼. 또 다시 '라미트'는 새로운 몸으로 만들어질 테니까.
안드로이드에게 주어지는 명령어에는 한계가 있기에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지 못해. 그래서 크리쳐인 당신과 접촉하길 줄곧 기다린 거야.
하늘에 떠 있는... cctv 같이 생긴 박스를 봤니? 그 안에 모든 전력을 공급하는 '중앙 관리 체제'가 있어.
그걸 박살내.
이곳에 맞서 싸울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아. 부탁해,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당신뿐이야.
 
메테오:그걸 부수면 너희는 어떻게 되는데?
 
LAMITT:중앙 관리 체제의 전력이라 함은, 은행을 비롯한 모든 국가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편 반란분자를 감시하고, 죽은 사람을 안드로이드로 살려내며,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선보이는 능력.......
그러니 중앙 관리 체제가 소멸할 때엔 우리의 동력도 끊기게 돼.
이 도시가 그 기체 하나로 돌아간다고 여겨도 과언이 아니야.
...메테오, 부탁을 들어주겠어? 네가 말한 옛정이 여전히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메테오:동력이 끊겨 죽는다는 말인가. ...아르버트가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테고, 그걸 부순다고 수정공이... 그라하가 백 년 전 모습으로 돌아오기라도 해?
만나서 설득을 하는 수도 있잖아. 그 녀석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어! 말을 하면 들을 거야. 이 세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리고, 네 뜻을 전할게. 그렇게 하면...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저번 일은... 그래, 오해가 있었거나, 설명이 부족했던 거야.
 
LAMITT:미안하지만, 메테오. 네가 생각하던 100년 전의 그라하 티아는... 지금의 수정공과는 현저히 달라. 그의 생김새나 구실만을 콕 찝어서 얘기하는 건 아니야. 저번 일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이곳에 오게 된 계기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내 말이 틀려?
분명 AOC의 건물은 그 날 이후 너와 신의 충돌로 인해 무너져내렸어. 얼마 가지 않아 안전지대와 시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싶어하는 수정공이 그 건물의 꼭대기를 독차지하게 되었지. 하지만 말이야, AOC의 실질적인 사념은... 여전히 대를 이어가고 있어.
도시를 구원하겠다는 명목을 앞세워 암암리에 사병이 돌아다니고 있거든. 그것도... "AOC"라고 떡하니 적힌 군복을 입고!
...있지, 이제 와선 AOC를 단순하게 기관을 칭하는 이름으로만 볼 수 없어.
AOC는 기관을 벗어나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상징인 거야.
 
메테오:(내 말이 틀리냐, 묻는 말에 고개를 떨군다. 잇새로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녀석이라면 대화가 통할 거라 믿고 싶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쪽의 바람일 뿐이다.)
군복을 입고 다닌다면 암암리에 돌아다닌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은데. (내려다보면 낡은 군복에 박힌 AOC의 로고가 보였다. 그래서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던 건가?)
...그 수뇌부도 수정공이 맡고 있나?
 
LAMITT:그런 셈이지.
 
옛 동료를 빼닮은 안드로이드는 명확하고도,
 
필요 이상으로 당신에게 확신을 주며 대답합니다.
 
소망과 믿음. 그리고 차가운 진실.
 
이번에도 일치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메테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그럴 리가 없습니다.
 
파트너와 함께했던 그 많은 사건들은, 줄곧 우리의 정의를 좇아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전부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당신은 떠올립니다.
 
누군가가 관여한 게 아닐까요?
 
메테오:(어젯밤, 결연한 목소리로 정의를 말하던 파트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꼿꼿하던 녀석이 자기 의지만으로 이런 짓을 벌일 리가 없지. 분명히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사고를 더듬어 마지막 순간에 들었던 부름을 떠올렸다. 그 미치광이 중절모 외계인. 우리를 구경하다 못해 가지고 놀고, 시험하고, 되살려 놓기까지 한 게 그 자식이라면... ...곁을 지키던 파트너에게 손을 뻗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순다고 치자. 전기야 복구하면 되고, 시설이야 수복하면 될 텐데.
수정공이 이 모든 짓을 혼자 벌였을 것 같진 않아. ...그럴 수 있는 녀석도 아니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지금으로서는 장담은 못 하겠군.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볼게.
 
당신은 이 이야기의 내막에 제삼자가 관여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과 그라하 티아를 알고 있고, 말도 안 되는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자.
 
눈치채셨나요?
 
100년 전의 세계에서 만난 미고입니다.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봐도 당장 거처를 알지 못하니(지구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미미하게나마 안도하는 일 외엔 별수가 없습니다.
 
LAMITT: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거야? ...고민이 많아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르버트는 괴로워할 거야. 그뿐만이 아니라... 이 환상과도 같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라미트는 얼굴을 찡그립니다.
 
LAMITT:중앙 관리 체제에는 반경 1km의 강력한 쉴드가 펼쳐져 있어. 기체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 같은 거지. 그걸 부수기 위해선 안전지대의 남쪽과 북쪽, 총 두 곳에서 쉴드의 약점을 파괴해야 해.
 
메테오:...하나씩 부숴놓으면 되는 거지? 그런 건 자신 있어. 반경이 1km나 된다니 좀 귀찮겠지만.
 
라미트는 소매를 걷고 당신에게 손목을 드러냅니다.
 
갑작스레 먼 미래에 달한 당신이라면 알 수 없는 기계장치, 그것은 새파랗게 홀로그램 빔을 발사합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기계는 안전지대의 도시 구조를 비추고 있습니다.
 
LAMITT:민간인에게 방해받거나 목격되지 않는 곳, 그리고 탄환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곳은... 여기야.
 
지도에서 두 구역이 빨갛게 표시됩니다.
 
좌표가 드러난 곳은 각각 (구) AOC와 X제약 회사의 옥상입니다.
 
LAMITT:지금 위치는 AOC 건물의 지하. 그러니... 이쪽 건물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겠어.
 
메테오:탄환의 사정거리라고 했는데, 그 쉴드라는 건 쏴서 없앨 수 있는 건가?
(구역을 확인하고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이 넓은 도시에서 핵심이 되는 게 하필이면 저 두 곳이라니, 우연조차도 우습게 느껴진다.)
 
LAMITT:응, 그러니까... 메테오, 너에게 이걸 줄게.
 
라미트는 당신에게 익숙한 탄환이 든 라이플, 그리고 단도를 내밉니다.
 
라이플의 탄창이 푸르게 빛을 발산합니다.
 
발광하는 불빛은 당신의 뺨을 비춥니다.
 
메테오:...이게 뭔데? (라이플을 받아들자마자 익숙한 손길로 점검을 마쳤다.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 탄창을 조심스럽게 만져본다.)
 
LAMITT:뭐긴 뭐야, 대 크리쳐 살상탄이지.
탄환의 수는 매우 적기 때문에 쉴드를 파괴할 때에만 사용해야 할 거야. 단도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거지.
...정말 미안해, 메테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야.
 
메테오:(챙긴 단도를 허리춤에 찬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잠깐, 대 크리쳐용 무기로 쉴드를 부수라니... ...내가 기억하는 살상탄에는 그런 성능은 없었어.
 
LAMITT:미리 파악해 보건대, 그 쉴드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장벽일 거야. 난 아르버트의 옆에서 이것저것 연구를 일삼았거든.
그래서 너에게 해독제를 투여할 수 있던 거고... 난데없이 독을 준비하라는 지령이 내려와서 여분의 해독제까지 만들어뒀지. 설마 당신한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대 크리쳐 살상탄은 마력 장벽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화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 판단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메테오:그 독약은 네 작품이었나. ...다음부터는 팔 한쪽 정도는 움직일 수 있게 해 줘.
(다음이 없다면 더 좋고. 가볍게 농담을 던지고는 확인을 마친 라이플을 어깨에 맸다.)
...아, 한 가지만 더.
네 말대로 하고 나면 안드로이드들은... 지금의 너는, 동력을 잃게 될 텐데. 그건 죽는다는 뜻이잖아.
(입술을 세게 물었다가 뗀다.) 아르버트와도 더는 만나지 못하게 될 거야. ...그래도 상관없는 건가?
 
LAMITT:... ...
괜찮아, 이미 한참 오래 전부터 결정을 내린 사항이야.
그리고... 나는 아르버트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원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나라는 거짓된 희망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도와줘서 진심을 다해 고마워.
 
메테오:(어깨에 맨 소총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내려앉는다. 어제와 변함없는 라미트의 목소리가 위화감을 더했다. 거짓된 희망이라. 이토록 비슷하게 보이는데도, 그것만으로는 망자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울 수 없었던 거겠지. 이도 저도 아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래. 그게 최선이겠지.
아무튼... 고마워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내 쪽인 것 같다. 덕분에 그라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제 할 일을 하러 가야겠군. 나도 내 파트너가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하거든. ...이곳처럼 삭막하고 허울뿐인 도시를 희망이라고 믿으면서, 자기 것도 아닌 정의에 매여 있는 꼴을 두고 볼 순 없어.
 
LAMITT:너의 말에 동의해. 그라하를 위해서라도, 아르버트를 위해서라도.
우린... 마땅히 해야할 일을 수행하는 것뿐이야.
메테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라미트가 들고 있던 조명을 어딘가로 비춥니다.
 
깜빡이는 빛이 향한 곳은 복도로 향하는 문입니다.
 
LAMITT:라미트 또한... 너의 행적을 응원하고 있겠지.
안드로이드인 나는, 그렇게 느껴.
 
메테오:...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건 네 마음이기도 한 거야.
응원 고맙다.
(입꼬리를 당겨 웃고는 조명이 비춰진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쥔 채 LAMITT를 돌아보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문의 틈새로 밝은 빛이 새어나옵니다.
 
...분명, 어두운 창고에서도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라미트와 시체 더미를 등지고 밖을 나서고 나면,
 
당신은 엘레베이터를 향해 달려나갑니다.
 
복도를 통해, 아까 타고 갔던 엘레베이터의 앞으로 가더라도...
 
누군가가 버튼을 박살내버린 것 같습니다.
 
건물의 층수는 100년 전 그대로 36층.
 
지하 1층의 안드로이드 폐기 창고에서 옥상까지 올라가기로 합니다.
 
잘 닦인 계단이 당신을 반기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그때와 같이,
 
위로, 위로, 더 위로.

 
메테오:
기준치: 60/30/12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모든 일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아요.
 
늘 그렇듯, 현재 또한.
 
23마리의 형체가 당신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아니, 23명이라고 명시해두는 편이 좋을까요?
 
그들은 팔을 뻗어 수신호와 함께 동료들과 소통하고,
 
막아서는 사람들: 적을 포착했다, 적을 포착했다. 좌표는... ...
 
굳은 표정으로 라이플을 든 채 당신을 대우하고 있습니다.
 
마치... 표적이 당신이라는 것처럼!
 
메테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착각했군요.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라미트와 같은 안드로이드...
 
겉보기에는 인간과 다를 것이 없고, 그저 조금 딱딱한 군인들이지만.
 
메테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메테오:(익숙한 비일상감. 전투가 주는 비정형적 짜릿함.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람을 해칠 필요가 없다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지난 몇 년을 지겹도록 함께하던 파트너가 등 뒤를 지키고 있지 않다는 건 불안하지만, 이제 와서 도망치진 않아.)
(오직 우리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늘 그렇듯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한 명이 딴청을 피우고 있을 뿐.)
(낡은 군복의 호주머니에서 비어버린 주사기가 잡혔다. 이거면 되겠지. 잡은 것을 기계들의 틈으로 던져 시선을 끈다.)
 
복도의 바닥을 강타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안드로이드들은 황급히 총구를 주사기를 향해 겨눕니다.
 
동시에, 당신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습니다.
 
이제 와서 도망치진 않아.
 
무언가가, 마음 속 깊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양손에 새파란 기운이 헛돌고, 당신은 또 다시 깨닫게 됩니다.
 
힘이 당신을 감쌉니다.
 
얼음의 방패
 
눈의 검
 
지금부터 당신은, 전투에서 특수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들은 기능치 판정 후 사용할 수 있으며, 매 턴당 1회씩 가능합니다.
 
패시브 스킬이므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시에는 반드시 선언해주세요.
 
전투를 개시합니다.
 
battle
 
메테오, 당신의 턴.
 
메테오:(손에 맺히는 푸른빛을 보며 자신에 찬 얼굴을 했다. 그래, 이제 와서는 도망치고 싶지도 않다. 갚아주어야 할 빚이 있고, 받은 부탁이 있고, 만나러 가겠다 약속한 녀석이 있다.)
(낯선 표정을 지었던 파트너. 그 표정을 떠올리는 순간 언짢음을 닮은 의지가 솟았다. 총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총대 부분을 조끼 안으로 밀어넣고, 길을 막은 기계 더미를 향해 덤벼든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6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당신은 인파 속을 헤집기 위해 몸을 던집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가격하고, 다리를 걸기도 합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18명의 안드로이드들이 주춤거리고...
 
...그리고 또 다시 손을 뻗어 퍽!
 
주먹의 마디가 볼에 닿는 순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손에 닿은 안드로이드의 살결이 녹아들어갑니다.
 
안드로이드:끄아악...!!!
 
그렇게, 총 20명의 안드로이드는 전투불능 상황에 이릅니다.
 
안드로이드:신속하게 제압하라! 쓰러진 녀석들의 수를 무전으로 연락해!
 
안드로이드 한 명이 당신의 곁에서 총기를 휘두릅니다.
 
안드로이드:
명중 부위
가슴
 
총의 딱딱한 몸통이 당신의 가슴을 후려칩니다.
 
턱 막히는 호흡과 함께 가슴으로부터 저릿한 통증이 밀려듭니다.
 
메테오, 5의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받아들이는 몸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음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9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충격을 예상하고 몸을 굽힌 순간, 심장을 감싸고 한번 더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문 잇새로 얼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이걸 네가 봤더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아니지, 보고 있으려나.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네 응원이라고 생각하지, 파트너!
 
안드로이드가 들고 있던 총대가 튕겨져 나옵니다.
 
푸른 마력이 돌던 손으로 가슴 부근을 감싸면,
 
신체의 일부가 지나치게 단단합니다.
 
지켜야 할 사람을 떠올릴 시 힘이 솟는 것도 클리셰라고 말하던가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체력 차감 없습니다.
 
다시, 당신의 턴.
 
안드로이드들은 당신의 상태를 보고합니다.
 
메테오:(튕겨 나온 총대를 잡아채 단창을 잡듯이 쥐었다. 보급용 총의 내구도를 생각하면 휘두를 수 있는 횟수는 많아야 세 번 남짓, 남은 안드로이드는 전방으로 셋. 우선은 지원을 부르는 것부터 막아야겠군.)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8
(개머리판을 휘둘러 기계 병사들의 목 뒤, 집적 회로가 있을 만한 부분을 노리고 가격한다. 충격으로 총대가 꺾여나가자 복도 구석, 불이 들어온 감시 카메라를 향해 총기를 내던져 버렸다.)
 
안드로이드:크헉... 절대로... 목표물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해야... ... ...
 
개머리판에 나가떨어진 안드로이드가 뒷목을 감쌉니다.
 
목 뒤에 한 번, 감시 카메라에 한 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총기는 어설프게 구겨져버리고 맙니다.
 
앓는 소리를 내는 안드로이드들을 뒤로하고, 앞서 나가야 할 때입니다.
 
나뒹굴고 있는 그들을 두고 계단을 올라섭니다.
 
한 칸, 한 칸.
 
...
 
계단을 오르던 중, 최강의 크리쳐인 당신은 기억해냅니다.
 
100년 전에는 이 층에 회의실이 있었죠.
 
먼 미래로 와도 회의실이 건재한지 확인해 보러갈까요?
 
직원들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자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메테오:(100년째 유지되고 있는 건물치고는 변함없는 구조, 계단 밖으로 보이는 복도를 살피던 중 익숙한 생김새의 공간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여긴... 회의실로 쓰이던 곳이었지.)
누굴 마주치기라도 하면 귀찮아지겠는데...
(가슴팍의 낡은 AOC 로고를 보며 뒷머리를 주물렀다. 이곳에 방문해서 좋았던 기억이라고는 없지만, 적어도 이곳에 올 적에는 언제나 녀석과 함께이긴 했었다.)
...놓친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확인만 해 두자.
(듣는 이가 없는 중에도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경비가 없는지 대강 확인한 다음, 천천히 발을 들인다.)
 
회의실에 들어오면, 드넓은 공간은 깔끔하기만 합니다.
 
다만 동그란 형태의 탁자에 놓인 종이 무더기가 눈에 띄는군요.
 
이곳에 오며 우려했던 '놓친 것'이라는 게, 이걸 뜻하는 건 아닐까요?
 
메테오:(반색하며 종이를 집어든다. 열려 있던 문을 슬쩍 닫아 잠갔다.)
밥 먹겠다고 회의실에 보고서 놓고 가는 놈들이 꼭 하나씩 있었지. (주변의 감시 카메라까지 확인한 뒤, 불빛이 보이지 않자 첫 장을 넘겼다.)
 
기잉, 감시 카메라는 복도를 향해 정상적으로 가동합니다.
 
사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이의 내용이 확인됩니다.
 
이건... ‘중앙 관리 체제’라는 기계에 관한 자료네요.
 
<현재의 안전지대를 관리하고 안드로이드를 운영하는 주력 시스템>
 
센스 없는 제목과 함께 중앙 관리 체제에게 요구되는 자원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내부 구조는 당신이 가진 지식으로 알아보기 힘듭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볼까요.
 
메테오: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기계를 사용하는 데에 막대한 마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요, 최소한 작은 나라의 국민이 가진 마력의 총량만큼은 있어야…….
 
중앙 관리 체제가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게 안전지대 시민들의 마력을 원동력으로 삼아 돌아가고 있던 건가요?
 
문득, 올라가며 마주친 안드로이드를 떠올립니다.
 
생명을 운용하기 위해 생명을 소모한다.
 
파트너답지 않은 기이한 발상입니다.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다보면...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에 이릅니다.
 
얇은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고, 더 볼 것은 없어 보입니다.
 
좀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메테오:(복도에서 마주쳤던 안드로이드들이 입고 있던 검은 군복을 떠올렸다. 그들을 전투에 투입해서 지금의 평화를 만들어낸 건가. 멀쩡한 인간을 크리쳐로 만들어 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은 생각이지만...)
...죽은 시민들까지도 안드로이드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혼자가 된 탓인가, 쓸데없는 말이 늘어버린 모양이다. 늦장 부릴 때가 아니지. 서류 뭉치를 적당히 내려놓고, 감시 카메라의 사각을 틈타 회의실을 빠져나온다.)
 
당신은 회의실을 어지럽힌 뒤 계단으로 나옵니다.
 
이전의 경험을 되살려 보면,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면 주의를 요했어야 했죠.
 
메테오:
기준치: 60/30/12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리고, 당신에게 필요한 재량은 <4번의 능력>...
 
메테오:
건강
기준치: 99/49/19
굴림: 4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식은 죽 먹기군요.
 
이 정도 계단을 올랐다고 지칠 당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당신은 최강의 크리쳐니까요.
 
한 층, 한 층... 라미트의 부탁을 위해 계단을 올라갈 때였습니다.
 
...
 
당신은 옥상으로 향하던 도중, 자료실이 딸린 층수의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합니다.
 
이곳은 쉬는시간이 될 때면 그라하 티아가 자주 드나드던 곳입니다.
 
다른 요원들과는 달리 업무를 보지 않을 때에도 자료실을 들르고는 했죠.
 
그도 그럴게, AOC가 문서화한 정보들 대부분은 이곳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보도록 할까요?
 
메테오:꼭 들어와 달라고 열어놓은 것 같군. (꺼림칙하다, 생각하면서도 발소리를 죽였다.)
(파트너는 자료실과 도서관, 서점과 DVD 대여점을 비롯한 각종 보관소라면 껌벅 죽는 녀석이었다. 정작 이쪽은 전투를 제외하고 머리 쓰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혼자 드나드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라하가... ...수정공이, 중요한 무언가를 기록해 놓았다면 이 안에 넣어두었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타인이 되어 버리지 않은 이상, 기억 속의 그라하 티아라면. 보폭을 줄이며 자료실로 향한다.)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자료실에 도달합니다.
 
빼곡하게 많은 자료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메테오:
자료조사
기준치: 20/10/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자주 따라다닐 걸 그랬나.
 
떠올려보지만.......
 
생각나는 건 파트너가 먹던 붕어빵뿐입니다.
 
그렇더라도, 이 도시에 대해 알기 위한 최적의 수단은 이곳일 겁니다.
 
메테오:...그래, 붕어빵이 아니라, 책 사러 갈 때 따라갈 걸 그랬다고!
(빽빽하게 늘어선 서가를 노려보며 투덜거린다. 이걸 전부 뒤질 시간은 없겠는데, 기밀로 취급되는 자료라면 허술하게 보관하지도 않았을 테고.)
 
뭐라도 걸리라는 의미로, 손에 잡히는 대로 문서를 들어볼까요.
 
메테오:
기준치: 60/30/12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책 한 장을 집어듭니다.
 
제목은, <이성을 사로잡는 48가지 방법>...
 
막무가내로 고르더라도 별 볼일 없는 책을 들게 되는군요.
 
많고 많은 책들 중 필요해 보이는 정보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곤란한 상황 속에서, 구석에 컴퓨터 한 채가 놓여 있는 게 보입니다.
 
자료검색을 위한 컴퓨터를 회사에서 마련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죠.
 
그러나 검색창에 넣을 키워드는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원이 켜진 컴퓨터는 제대로 가동합니다.
 
메테오:(<이성을 사로잡는 48가지 방법>... 조금은, 아니, 사실은 제법, 흥미가 당기는 제목인데...)
(들고 있던 책을 눈에 띄지 않는 서가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다음에 올 때 찾아보기로 할까. 입을 맞춘 대가로 각혈하고 독살당하지 않는 방법, 어딘가에는 적혀 있을지도 모르지.)
때리지 않아도 되는 기계... 오랜만이네. (검색창을 뒤져 최근 검색 기록부터 살폈다. 수정공에 관한 키워드는 없나?)
 
최근 검색 기록에는 다양한 키워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건설 안전 조항', '행정법 개정', '장례 예약 절차', '안드로이드 복원 오류'... ...
 
...마우스 휠을 내리던 당신은 눈에 띄는 키워드를 발견합니다.
 
최근 날짜로 '테러'라는 키워드가 단순명료하게 적혀 있군요.
 
메테오:테러...? (라미트에게서 그런 소식은 못 들었는데. 게다가 이 도시는 표면상 범죄자를 일절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라하, 와서 이것 좀... ... ...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가 허공을 마주치고는 입을 다문다. 슬슬 이 빈자리에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테러라고 적힌 키워드를 입력하고 시선을 돌린다. 이럴 때가 아니지.)
 
파트너의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짧은 로딩 끝에 검색 결과가 드러납니다.
 
약 100년 전에 있었던 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크리쳐를 신으로 모시던 사이비 종교의 테러로 인해 신정부와 안전지대는 한 번 더 괴멸되었다.'
 
'절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정공’으로,'
 
'그는 직접 무너진 도시를 수복하고, 죽은 사람을 안드로이드로 되살려냈다.'
 
...
 
무언가 위화감이 들어 자료를 천천히 살펴보면,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안전지대가 파괴된 날짜와 정상적으로 동작하기 시작한 날짜가 너무나도 가깝습니다.
 
적어도 평범한 수단이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이상하군요.
 
그라하가 꼭, 옛 정부나 AOC의 상관들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합니다.
 
메테오:(녀석이 손에 넣은 것 같다던 '이상한 힘'은 이걸 말하는 거였나. 화면에 떠오른 낱말들이 꼭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조금 애 같을 때가 있어도 심지 하나만은 올곧은 녀석이었는데.)
(차라리 하루아침에 평행세계에 떨어졌다고 하든지. 평행세계도 이 정도로 엉망은 아니겠군. 계속해서 투덜거리며 화면에 새로운 검색창을 띄웠다.)
(수정공이 얻은 이상한 힘, 그 근원은 아마도 자신을 농락했던 중절모 외계인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100년 전, 어쩌면 하루 전, 그라하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는 건물 8층에 그 외계인이 마련해 둔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고,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면 건물 어딘가에는 그곳으로 통하는 길이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 방주라는 이름이었지.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는 수밖에. (한 번 정도는 편하게 풀리기를 기대하고 싶다. 키워드를 입력한 다음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당신이 누군가를 떠올리고, '방주'를 검색하면...
 
그 존재에 대한 내용,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던 방주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체 관련 기록이 거짓말처럼 소각되어 있습니다.
 
방주에 타고 있던 아이들의 행방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과거의 누군가가 정보를 고의로 지워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조금 더 딸깍거려 보더라도, 현재 상황으로는 필요 이상의 자료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메테오:(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화면을 닫았다. 기대가 엇나가는 건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멸망을 피한 이상 잠들어 있던 아이들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겠지만... 100년이나 지난 이상, 관련 기록을 찾기는 어렵겠지.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을 짧게 털고, 애먼 모니터의 상단부를 꽝 쥐어 박았다.)
 
테러로 인한 신정부와 안전지대의 괴멸.
 
이번에는 크리쳐도, 신도 아닌, 인간이 인간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또 다시 실수를 번복하고 맙니다.
 
그렇더라도 파트너와 함께했던 행적에 후회는 없습니다.
 
과거 그의 역할과, 수정공의 역할은 여전히 '인류를 구하는 일'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라미트의 말대로 이 세계는 분명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어요.
 
소지한 총은 무언가를 일깨우듯 무겁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계속해서 건물의 옥상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메테오:(품에 든 총을 세게 붙들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다. 그건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테지.)
(혼자였기에 몸을 던지는 선택을 했고, 혼자이기에 우스운 이상에 현혹되고 만다. 함께 보낸 시간에는 조금도 후회가 없지만, 너를 이 도시에 홀로 남기고 말았다는 사실을 돌이키면 번번이 가슴께가 저려 왔다. 어깨를 누르는 총대의 무게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무거웠고, 코끝에서는 혈향이 아닌 긴 겨울의 냄새가 났다.)
(이성을 사로잡는 수십 가지 방법도, 물론 언젠가는 알고 싶다. 그걸 너에게 써먹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지.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지금 알아내야 하는 건...)
이 반쪽짜리 세계를 멈추는 법. (낮게 중얼거린다. 문을 열어둔 채, 총대를 고쳐 잡으며 자료실을 벗어났다.)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당신은, 자료실을 나서 계단으로 향합니다.
 
복도를 걷는 울림은 한 사람 분입니다.
 
...
 
또 다시 계단을 올라갑니다.
 
이제는 정말로, 옥상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방금 지나온 층수는 20층이군요.
 
메테오:
기준치: 60/30/12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아, 역시 안도하면 안됐던 건데...
 
...
 
계단 아래에서부터 요원들이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탕,
 
당신의 앞머리로 탄환이 스쳐지나가고,
 
안드로이드:멈춰라, 범죄자! 그렇지 않으면 무력으로 제압할 것이다!
 
또 다시 지겨운 추적이 반복될 뿐입니다.
 
인간을 빼닮은 안드로이드들은 총 25명.
 
메테오:...멈춰도 무력으로 제압할 거잖아! (아슬하게 스쳐간 탄환이 뒤편 콘크리트를 박살내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 끌어봐야 득 볼 건 없겠군. 쥐고 있던 총대를 등에 두르고 손목을 턴다.)
(푸른빛이 맺히는 손바닥을 보며 짧게 심호흡했다. 기계는, 그래, 때려야 말이 통하는 법이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8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1
 
당신의 주먹이 안드로이드의 복부를 강타합니다.
 
팔을 휘두르는 속도에 당황한 안드로이들이 주춤거리고,
 
곧바로 다수가 당신에게 달려들어 손을 뻗습니다.
 
당신을 저지하기 위해 손목을 가로챈 안드로이드와 눈이 마주칩니다.
 
안드로이드:범죄자, 거기까지다!
 
씩 웃어 보이던 녀석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집니다.
 
맞닿은 살로부터 연기가 피어오르고, 안드로이드의 살결이 끈적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틈을 타 또 다시 '매우' 정확한 자세로 어퍼컷을 날리면...!!
 
총 9명의 안드로이드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게 됩니다.
 
근접전을 벌이며 당신의 머리가 공중에 흐트러집니다.
 
그때, 안드로이드 한 명이 당신에게 총구를 겨눕니다.
 
안드로이드:
명중 부위
가슴
 
탕, 명쾌한 울림과 함께 탄내가 납니다.
 
탄환이 당신의 군복 조끼를 향하고, 그 충격에 몸이 비틀거리고 맙니다.
 
체력 5 감소합니다.
 
몸에 도는 새로운 감각은 비단 공격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메테오: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이런! 방탄복 때문은 아닐 겁니다.
 
딱딱하게 강화된 전신이 탄환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체력 차감 없습니다.
 
메테오:(심장을 감싸고 터져나오는 푸른 빛줄기에 막힌 숨을 터뜨렸다. 콘크리트조차 뚫어버리던 탄환이다. 맥없이 꺾인 탄환이 바닥을 구르고, 충격이 사라진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보았다.)
나이스 캐치, 파트너. (허공을 향해 농담조로 외치며 다시 복도의 빈 공간을 밟는다.)
(제멋대로 산개하는 크리쳐를 상대했던 며칠 전에 비하면, 규칙적으로 이동하는 기계 무리의 경로를 계산하는 건 뻔한 장난, 때로는 그보다도 간단했다. 급소로 보이는 목 뒤를 노려 빠르게 접근한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8
 
안드로이드:무슨... 헛소리를, 컥... ... ...
 
안드로이드들은 하나둘씩 의식을 잃어갑니다.
 
아니, 가동을 멈추었다고 일컫는 편이 좋을까요?
 
그들의 급소는 사람들의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이고,
 
끔찍할 정도로 정직하게 공격에 당해줄 뿐입니다.
 
목 뒤를 가격당한 녀석을 마지막으로, 안드로이드 전원이 최강의 크리쳐를 대응하지 못해냅니다.
 
쩔그렁, 쩔그렁. 그들이 잡고 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계단에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면 알아챌 정도의 큰 타격음이 납니다.
 
전투가 종료됩니다.
 
그리고...
 
...
 
"으아악!"
 
안드로이드 무리의 반대 방향에서 비명 소리가 울립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면, 어째서인지 대면하는 게 처음이 아닌 듯한 요원이 보입니다.
 
AOC의 군복을 입은 그는 당신을 보고 크게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집니다.
 
거의 유령이라도 본 듯한 반응입니다.
 
메테오:거기 누구야?
 
갈색 더벅머리의 요원: 또, 또 살아나버린 건가요, 당신... ...
이상해요. 이건 이상하다고요. 분명 저는 당신의 시체를 처리했었는데요.
맥박이 잦아든 것도 확인하고, 시체의 몸에 불을 지른 것도 저인데... ...
바람에 날려버린 재가 아직도 손에 만져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살아난 거죠!
 
메테오:어... ...그게, 사정이 있어. 설명하자면 엄청 긴데, 유령은 아니니까 그렇게 놀라지 마.
그보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때 너... 크게 다쳐서 걱정했거든. (공격할 의사가 없다, 내비치듯 양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정황상 이 녀석도 본인이 아니라 안드로이드겠지만.)
멀쩡한 얼굴로 보니까 반갑네. 아무리 안드로이드여도 내 손으로 구했던 놈을 해치기는 싫고, 조용히 지나갈 테니까 모른 척해줘.
 
갈색 더벅머리의 요원: 그건... ...
으, 으으, 그 기억 때문에, 더 힘들다고.........
...당신 같은 사람의 몸에 불을 지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니... 애당초 '사람'이 맞기는 한 건가요?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가, 가만히 계세요...!!
 
재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살아났다고요?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는 회복력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인걸요!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이성 2 감소합니다.
 
당신이 그에게 말을 꺼낼 틈도 없이,
 
그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듯 벌떡 일어나버립니다.
 
그 자리에서 쓰러진 안드로이드들을 헤집고 밑으로 도망칩니다.
 
...의도치 않았던 만남으로 그는 많이 놀란 모양입니다.
 
그를 붙잡을 시간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위로 나아갑니다.
 
...

 
여러 번 전투를 마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숨을 헐떡이기도 하고, 멈춰서서 다시 군화의 매듭을 묶어두기도 합니다.
 
라미트가 건넨 라이플이 무겁습니다.
 
30층, 조금만 더 올라가면 건물의 꼭대기인데.
 
땀을 훔치며 차가운 계단에 잠시 몸을 앉혔을 때였습니다.
 
철컥,
 
등 뒤로 묵직한 이물감이 전해져옵니다.
 
그것은 아플 정도로 당신의 등을 강하게 누릅니다.
 
군인 꼬리표를 달았던 당신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 없습니다.
 
이것은 협박입니다.
 
ARDBERT:반갑다.
...방금 너를 보면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말이지.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거냐?
 
메테오:반가운 놈치고는 인사가 과격한데. 별짓 안 했어.
(난감한 눈치로 웃으며 손을 들어 올린다. 보면 제거하라는 명령을 듣고도 발포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적어도 이놈은 대화가 통한다는 뜻이지. 저 아래에서 마주쳤던 기계 덩어리들과는 다르게.)
쏘기 전에 말해두자면, 나는 라미트의 부탁으로 여기 온 거야. 이제부터 하려는 일도 마찬가지고.
 
ARDBERT:뭐라고? ...라미트가 무슨 이유로 너한테 부탁을 했다는 거지?
무전에 따르면 네가 이 도시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하더군. 이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중앙 관리 체제를 박살내겠다는 집념으로 사람들을 해하고 다닌다고.
라미트가 도시의 테러리스트에게 도움을 주기라도 했다, 이 말인가? 아무리 너라도 헛소리를 계속 한다면 봐줄 생각은 없어.
 
메테오:너를 구하고 싶다고 하던데. 제법 간절해 보였어.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숴 달라고 한 것도 그 녀석이고.
나야 너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 참견할 마음도 없다. 그래도 날 살려 놓은 건 라미트... 아니지, LAMITT가 맞아. 제대로 대화도 안 하고 지내는 건가?
 
ARDBERT:...제기랄, 세계의 적이 하는 말 따위...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수는 게 나를 구원하는 방식이라고...
그럴 리 없어... 알고는 있는 건가...? 중앙 관리 체제를 박살내면 라미트를 포함한 안드로이드들은 전부 끝장이 날 거라는 사실을!
이 평화로운 도시 아래에서, 라미트가 본인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가 없단 말이다...!
 
다시 한 번 총구가 당신의 몸을 거칠게 밀어냅니다.
 
메테오:(어젠 안전지대의 영웅이다 어떻다 하더니, 하루 사이에 멋대로들 불러대는군. 밀리는 대로 밀려나며 어정쩡하게 중심을 잡았다.)
그래, 도시의 평화는 둘째 쳐도! LAMITT가 죽고 싶어 한다는 게 나도 가장 의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물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나랑 여기서 실랑이를 할 게 아니라.
지금은 같이 연구하고 지낸다며. 날 죽일 독을 만든 것도 너희 둘이겠지. 난 그 녀석이 가져다 준 해독제로 여기 있는 거야. 못 믿겠으면 무전으로 확인이라도 해 보든지.
(무릎을 털고 총신을 다잡는다.) ...말마따나, 내가 세계의 적이라면, 날 도운 네 파트너도 같은 취급을 당해야겠군. 그래도 상관없는 건가?
 
ARDBERT:... ...
네 말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야. 그러나...
역시 안전지대를 파괴하려는 너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설령 그게 라미트의 뜻이더라도, 나는 녀석들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지켜야만 해. 100년 전 전투를 함께했던 너라면 알아야지!
 
퍽,
 
당신의 등이 군화에 떠밀립니다.
 
그대로 몸이 무너져 계단 몇 칸을 굴러떨어지고, 몸의 곳곳이 욱씬거립니다.
 
아르버트는 당신의 위에서 단도를 꺼냅니다.
 
ARDBERT:멈추지 않을 생각이라면 나를 지나가야 할 거다.
...예상했겠지만, 각오는 됐겠지?
 
상대방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크리쳐 동지.
 
일반 규칙에 따라 반격 및 회피가 가능합니다.
 
순서는 메테오, 아르버트.
 
한쪽이 전투불능이 되면 전투는 종료됩니다.
 
메테오, 전투를 개시합니다.
 
battle
 
메테오:알아. 알고 있으니까 부수겠다는 거야.
(자세를 낮추면 손끝에서 새파랗게 빛이 터졌다. 쇠붙이를 상대로 거리를 좁히고 싶지는 않지만, 지난 몇 번의 전투에서 몸을 감쌌던 푸른 냉기. 그게 있다면 육탄전에서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랐다.)
이 세계는 우리가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던 곳도 아니고, 사람들의 바람처럼 낭만적인 곳도 아니야. 하나같이 이상한 환상에 갇혀 있어! 이런 세상을 지킨다고 네가 알던 라미트가 기뻐할 것 같나?
엉망인 세계에 붙들려 있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냐. TRUTH, 젠장, 멈춰 있어서 어쩔 셈이야!!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피해: 3
 
ARDBERT:...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행적들이 전부 거짓이란 말인가? 이 세계가 네 녀석이 바라던 곳이 아니라면, 도대체 네가 싸워야 할 이유는 뭐지? 모두의 행복을 빼앗아가며 지켜야 할 대상이 뭐냐는 말이다!
내가 알던 라미트는... ... ...!!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계단을 뛰어오른 반동을 이용해 그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꽉 쥐고 있는 손이 그의 귀끝을 스쳐 지나가고,
 
아르버트는 손의 방향이 엇나가도록 당신의 팔을 붙잡습니다.
 
과거의 헬기에서 내보인 그 표정, 안전지대를 수호하는 아르버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ARDBERT: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자신의 정의에 의거해 올곧으면서도, 용기 있는 동료였고, 내가 옳지 못한 길로 나설 때면 정신을 차리게 해 주는... ...언제나, 언제나 그런 파트너였다고...
 
메테오:그런 파트너가 지금 이 도시를 부숴 달라고 하고 있어!! (복부를 노리고 휘둘러진 팔을 총신으로 쳐냈다.)
하나 묻자, 아르버트. 지금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되살아난 LAMITT를 보면서 행복했어?
난 어떤 행복도 뺏을 생각 없어. 여기서 멈출 생각도 없고.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6
(자세를 고쳐 주먹을 쥐었다. 장갑 틈으로 새파랗게 빛이 터지고, 손에 뭉친 빛줄기를 거칠게 휘두른다.) 너만한 녀석이 사살 대상을 발견하고도 쏘지 못했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이곳의 평화가 전부 쇼에 불과하다는 거.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4
 
메테오:우리가 해야 하는 건... 이 너머로, (목을 울리며 난간을 박찼다.) 나아가는 거다!
행복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야. 살다 보면, 이런 식으로... 막다른 길을 마주치기도 하잖아. 암벽이 됐든, 작전지 정문 앞의 크리쳐 떼가 됐든.
그렇다면 뚫고 가야지. 뚫리지 않는다면 돌아가면 돼, 길이 막혔다고, 누군가를 잃었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해결이 되나? 그게 네가 배운 최강의 방식인가?
돕지 않을 거면 비켜. 난 내 파트너 하나 감당하기에도 벅차다고!!
 
ARDBERT:... ...소중한 사람만 있으면, 그 외의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어.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
 
아르버트가 황급히 팔을 세워 당신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하나,
 
새파란 빛을 보고 동요한 그의 뺨에 직격으로 주먹이 꽂힙니다.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가 당신을 밀쳐냅니다.
 
혈액이 섞인 타액을 바닥에 뱉은 뒤 당신의 멱살을 그러쥡니다.
 
조끼와 바지에 붙은 장비들이 철렁거립니다.
 
ARDBERT:어쩌면 이런 것들이 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다 됐다고. 그래서... 나의 부탁을 들어준 네 파트너가 라미트를 살려냈다.
나도 알고 있어...! 나를 비롯한 이곳의 사람들은 정처없이 한곳에 머무르고만 있다고! 물길 하나 나지 않은 썩어버린 물웅덩이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 거품처럼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하고 있지!
그래, 어쩌면 나는 두려워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라미트와 이 안전지대를 잃을 수가 없단 말이다.
 
아르버트의 손에 놓인 단도가 빛을 반사합니다.
 
ARDBERT:그러니 네가 나를 이겨보라는 거야...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그는 당신의 허리를 노립니다.
 
ARDBERT:
단도
기준치: 75/37/15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4
 
메테오:......!!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날붙이가 번쩍이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비튼다. 위험하잖아, 이 멍청한 자식이...!)
(죽인다고 죽지 않을 놈이라는 건 안다. 다만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멸망에 저항했던 동료가, 하룻밤 사이에 이런 꼴이 되어 있다는 건 원망스러웠다. 허벅지에 매단 단도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짧은 고민 끝에 손을 떼고 만다.)
너무 오래 알고 지냈지, 우리? 훈련도 같은 부대에서 받았고, 첫 임무도 너랑 같은 조였나....
그때 넌 네가 고른 임무 루트가 구리다는 것 정도는 쿨하게 인정하는 멋진 자식이었는데.
 
메테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4
이제 와서 이런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니 아쉽네.
(정강이를 걷어차 중심을 무너트린다. 단도를 빼앗아 검날 부분을 손으로 쥐었다. 장갑 너머로도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눈앞의 관자놀이에 손잡이 끝을 콱 박아 넣었다.)
 
ARDBERT:크윽...!!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오, 래... 알고... 지냈다고... 넌 처음부터, 이런 무모한 짓을 일삼고 말이야...
맞는 말을 재수 없게 말하는 것도 똑같군그래....
 
타격을 맞은 아르버트의 관자놀이에 피가 흘러내립니다.
 
크리쳐의 맥박이 점차 빨라집니다.
 
제대로 피해를 입은 모양인지, 그는 주춤거리며 다시 중심을 다잡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무거운 몸이 바닥 위로 가라앉고 맙니다.
 
아르버트는 매서운 눈으로 당신을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고 시선을 거둡니다.
 
팔꿈치로 자신의 몸을 부축한 뒤 당신에게 양손을 들어보입니다.
 
관자놀이를 한 대 맞고서야 전투를 더 이어나갈 의향이 없어 보입니다.
 
전투가 종료됩니다.
 
ARDBERT:...제길, 그만해. 너한테 얻어맞고서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메테오:맞기 전에 고쳐먹었으면 좀 좋냐. (들고 있던 단도를 난간 아래로 던져 버린다.)
 
단도를 던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쨍그랑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헛웃음을 내뱉은 아르버트가 당신의 손을 향해 턱짓합니다.
 
ARDBERT:...그건 뭐였나?
네 손이 얼굴에 닿는 순간... 맞은 부위가 타들어갈 듯이 뜨거워져서 당황했거든.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표정 볼 만하네. 너도 모르면 됐다. 이런 세상에 특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지... 수정공이 자리를 차지했을 때부터.
 
메테오:(빛이 사그라든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펴 본다. 단순히 알파형 크리쳐의 능력인가 싶었는데, 이 녀석까지 이상하게 여길 만큼 센 힘이었나?)
(난간을 쥐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사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
라미트도 그라하가 달라졌다고 하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쓸 수 있는 힘이라면 어떤 능력이든 쓸 거야.
 
ARDBERT:(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 천천히 옷을 털고 일어나며 인상을 구겼다. 아프게도 때렸네.) 그라하... 였나.
너도 고민이 많겠군. 수정공과 말이 잘 통할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다시 그를 만날 생각이라면... 너는 후회없이 행동해라.
나처럼 멍청한 짓을 번복하지 않도록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때로는 안드로이드 라미트를 보고 안도할 때도, 혼란에 빠질 때도 있었어.
난 네가,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잃게 되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대가로 영원을 얻어 봤자 손해보는 장사거든.
 
메테오:(잠자코 듣던 중, 마지막 층계를 오르며 아래를 돌아본다.) ...걱정 마시지. 나도 후회할 짓을 두 번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
너야말로 후회하기 싫으면 LAMITT에게 가 봐. 넌 멍청이가 맞지만, 네가 한 짓까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그쪽은 여전히 영리한 것 같더라.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발소리가 울리도록 다시 걸음을 뗐다.)
 
ARDBERT:... ...
그래, 알았어. 걱정마시고 네 일이나 처리하러 가지 그래. 파트너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다면서.
그리고... 이건 나도 다를 게 없으니 이만 가봐야겠다. 엘레베이터가 고장이 난 게 원망스러울 지경이군.
머, 멍청이는 어디서 나온 소리야...?
 
메테오:저거 봐라, 네 입으로 뱉어놓고 세 줄만에 까먹었으니 멍청이가 맞지....
 
ARDBERT:그랬던가...
아무튼, 수고해라. 이쪽은 라미트랑 대화를 나눠야겠으니까!
 
상대가 비록 죽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라고 아르버트는 말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이해합니다.
 
진짜와 흡사하지만, 진짜가 될 수 없었던 소중한 사람의 안드로이드.
 
아르버트는 등을 돌려 떠납니다.
 
...
 
AOC의 고층에는 영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고군분투 끝에 간신히 건물의 꼭대기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36층, 최상층입니다.
 
오르던 도중 이렇게 단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계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그러니, 이번에도 당신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육중한 철문에는 엄중한 보안장치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이런 장치로 당신의 침입을 막을 수는 없겠죠.
 
아무런 판정 없이 기계를 박살낼 수 있습니다.
 
메테오:
근력
기준치: 99/49/19
굴림: 7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핏물이 묻은 장갑 끝으로 장치를 부숴놓는다. 철문을 대면하는 순간 무언가 흐릿한 소리로 안내가 들린 것도 같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순순히 따라줄 마음은 없다.)

 
클리셰를 박살내듯, 당신은 손쉽게 옥상에 침입합니다.
 
회청색 세계 위.
 
눈이 휘날리는 허공에는 정육면체의 기계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뒷모습입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립니다.
 
이곳은 클리셰 SF 세계관,
 
죽은 사람은 필요에 의해 안드로이드로 되살아나는 세계입니다.
 
지금의 안전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앙 관리 체제라면,
 
그걸 수호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자명합니다.
 
WARRIOR:꼭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아니, 붙어보고 싶었다는 쪽에 가까우려나.
 
메테오:......갈수록 환장하겠군.
난 붙기 싫어. 부탁이니까, 제발, 대화로 해결하자.
 
WARRIOR:원하지 않았던 전투는 이미 이 세계에 너무 많았어. 너와 내 신념이 충돌하는 이상, 해결 방법이 고작 '대화'가 될 순 없지.
부탁도, 당부도, 간청도... 꼭 중요할 때가 되어서야 쓸모가 없어지는 법이더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알다시피 나는 이곳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
 
메테오:그래, 알다마다...... (그라하 티아 이 망할 놈, 중얼거리며 뒷목을 만졌다.)
크리쳐로 세상을 겉돌던 시절부터 줄곧 생각했었어. 인간과, 인간을 닮았을 뿐 인간이 아닌 것들의 공존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크리쳐에게 살려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라하가 크리쳐가 되었을 때... 스스로 이 길을 골랐을 때. 그리고 조금 전 LAMITT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자신이 없어져. 너는 분명히 내가 아니지만, 내가 믿어왔던 것들은, 줄곧 '신념'이라 생각해왔던 것들은... 네게도 남아 있었겠지?
너와는 싸우기 싫다. 이런다고 물러날 네가... ...내가 아니라는 건 알아. 그래도, 겨우 나 하나조차 설득하지 못해서 싸우고 싶지는 않다.
알아들었으면 여기서 비켜. 이 빌어먹을 머저리야.
 
WARRIOR:그래, 네 말과 같아. 비록 또 다시 내가 나로서 있지 않게 되었지만... 안드로이드가 된 나에게도 신념이 있지. 그건 바로 중앙 관리 체제를 지키는 것, 그리고 수정공을 포함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
...나라고 너를 설득하고 싶지 않았겠나? 모두를 지킬 방법을 찾고 싶었어. 설령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녀석이라도.
하지만 고집불통인 너라면 손을 쓰지 않고서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쓸데없는 대화는 무관하게, 여전히 너는 내 뒤에 있는 쉴드를 박살낼 생각일 테고. 맞지?
그 광경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네가 그랬듯, 나 또한.
자신이 없고, 푸석한 눈덩이처럼 용기가 바스러져간다면...
이곳에서 비켜. 앞서 모든 걸 겪은 주제에 머저리같이 굴지 말고.
 
올곧게 바라보던 눈이 곡선을 그립니다.
 
당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가볍게 웃습니다.
 
깨끗한 군복을 입은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듯 오른쪽으로 길게 스트레칭 합니다.
 
눈과 먼지가 붙은 당신의 군복과 대조됩니다.
 
WARRIOR:...싸울 마음이 들도록 만들기도 전에 날이 새겠군.
 
메테오:사람들의 자유와 생명을 갉아먹어서 만들어 낸 평화가 어떻게 낙원이야. (심호흡과 함께 입고 있던 군복의 먼지를 털어냈다.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번번이 신경을 긁어놓는다.)
인간은 숫자도 기호도 아니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낼 수도, 저울에 매달 수도 없어!
(총대를 뒤로 돌려 매고 끝이 너덜너덜해진 조끼와 장갑의 매무새를 고친다. 고개를 들어 눈을 응시하면, 빌어먹게도 새파란 눈동자가 눈발에 번져 보였다.) 그 녀석도 그걸 알고 있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망할, 백 년 전까지만 했어도.
대화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알아. 그러니까 우리가 머저리 소리를 듣는 거겠지....
네 소원대로 붙어 주마. 덤벼.
 
WARRIOR:사람들의 행복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건가? 그들은 소중한 사람과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며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지.
금세 물거품이 될 눈앞의 환상이더라도, 무거운 눈발에 덮여 안전지대의 모든 구역이 잠길지라도...
...
 
메테오:...말 많네, 답지 않게.
옛날 생각이라도 났나? 그렇게 행복해서, 지금 네 파트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데?
지키겠다고 약속한 놈 하나도 제대로 못 지켜낸 게 우리다. 세상 온기는 다 얼어 죽었겠군.
 
WARRIOR:...웃기지 마. 너와 나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 지켜낼 것들이 남아 있는지의 여부라고!
 
그가 자신의 주먹을 붙듭니다.
 
WARRIOR: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싸워야 한다.
싸워야 할 곳이 있다면 그곳에 내가 있고,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차가운 숨을 내뱉고 있다.
안전지대를 수호하며,
모두가 살아남는 내일을 그리고...
 
WARRIOR:이 끝없는 눈발이 그치지 않는 한,
쓰러지지 않아.
 
당신을 상대할 때는 일반 룰을 따라 반격과 회피가 가능합니다.
 
당신을 상대할 때도 여전히 특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 안드로이드화된 자신과의 전투를 개시합니다.
 
battle
 
메테오:알아, 그래. 알다마다......
(골이 울리다 못해 깨지는 것 같다. 똑같이도 만들어 놨군. 그라하 티아, 이 지독하고 치사한 놈.)
(저건 죽이지 않고서는 눕힐 수 없다.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한 번 더 심호흡을 했다. 밟은 눈바닥에서 질퍽한 소리가 나고, 푸른 섬광이 터지도록 주먹을 쥔다.)
이봐, 하나 묻자.
처음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게 언제였지?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피해: 4
 
그는 당신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갑니다.
 
WARRIOR:...질문의 취지가 뭐지.
 
메테오:네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야겠어.
 
WARRIOR:진짜가 누구인지 판별하고 싶어서?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6
 
그는 굳게 쥔 주먹을 높게 들어보입니다.
 
기합을 싣고, 맞닥뜨린 것은 당신을 향한 강한 바람.
 
훅,
 
당신의 복부에 안드로이드의 주먹이 내리꽂힙니다.
 
턱 막히는 호흡도 잠시, 당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에 대해 깨닫습니다.
 
[얼음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
 
다급하게 복부를 딱딱하게 굳혀 보지만, 그의 손으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이 몸의 중심을 뒤흔듭니다.
 
과연, 최강의 안드로이드입니다!
 
체력 5 감소합니다.
 
메테오:아니,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다면... (이 미친 자식이, 뼈와 내장이 어긋나는 충격에 숨을 들이켠다. 상쇄되다 마는 통증에 핏물을 토해냈다.)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거든.
(피맛이 나는 입가를 젖은 장갑등으로 훔친다. 이건 몇 대 못 버티겠군. 나가떨어졌던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자세를 고쳤다.)
잊었어도 상관없어. 수정공이 고작 그 정도도 심어주지 않은 모양이지.
 
WARRIOR: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현재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중앙 관리 체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설마 그라하 티아를 보호하고자 했던 마음을 잊었냐고 할 셈인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군.
 
메테오: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잊은 게 맞네, 그래. 기왕 안드로이드가 될 거면 지능도 좀 높여 달라고 하지 그랬어.
(기억 속 그라하라면 절대 들어주지 않을 부탁이긴 하다. 으스러진 복부를 움키고, 머저리의 뒤통수로 도약한다.)
네가 지키고자 했던 그라하 티아는 사람들의 목숨과 자유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녀석이던가?
(허벅지에 차고 있던 검은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상대가 자신이라니, 우습게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 녀석을 만났던 날을 기억해?

 

 
메테오:
단도
기준치: 75/37/15
고장: -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9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피해 도약합니다.
 
옛 파트너의 시범을 떠올리며 땅을 박차고 올라섭니다.
 
높이, 더 높이.
 
이 전투를 바라보고 있을 누군가를 연상하면, 당신의 투지는 더욱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얼토당토않는 생각을 하나 싶었지만,
 
이 또한 파트너 그라하가 보여준 모습이었습니다.
 
WARRIOR:수정공은 그럴 녀석이 아니지. 본인의 시간과 힘을 안전지대에 전부 투자하고 있으니까.
얕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재난에 휘말려 눈 속에 파묻혔을 때다.
단도
기준치: 75/37/15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8
 
캉, 단도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차가운 대기를 울립니다.
 
얼어붙은 칼날이 아래로 미끄러집니다.
 
도약한 상태로 나이프를 내려찍는 힘을, 그는 버텨내지 못합니다.
 
'나' 역시 이 이야기의 화제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일까요?
 
손목을 빠르게 휘둘러 군복의 등 부위를 길게 찢습니다.
 
WARRIOR:...!!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선배님이 한번 시범을 보여주시겠다, 이거지...?
 
메테오: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너 같은 후배 둔 적 없다.
(발을 걸어 그를 넘어트렸다. 옥상 바닥을 구르면 마찬가지로 놈의 군복도 더러워졌다. 이제야 좀 어울리는군. 비틀어진 웃음을 흘린다.)
그래, 눈 속에서 한심하게 죽어가던 널 기어이 살려 놓은 게 그 자식이지.
그때 그라하는 네게 웃어 달라고 했었어.
그리고 널 지키겠다고 했었는데... ... ...
 
메테오:지금 이 꼴이 안 보이나? 너는 멀쩡하게 웃지도 못하고, 수정공은 너를 지키기는커녕 사람들을 시켜서 독살이나 하고 앉아 있군.
퍽도 행복하게 굴러가겠다. 이런 도시가.
단도
기준치: 75/37/15
고장: -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7
 
당신의 군화에 걸려 그가 옥상의 바닥 위로 넘어집니다.
 
단도를 들지 않은 손이 눈송이에 파묻힙니다.
 
차갑고 혹독한 바람이 그의 앞머리를 휘날립니다.
 
WARRIOR:수정공은... 모두의 웃음을 위해, 안전지대의 안위를 위해 어떤 녀석보다도 노력하고 있다고...!!
최선의 안전을 보장 받는 이 세계에는, 수정공의 정의에 오점이란 없단 말이다...!
단도
기준치: 75/37/15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3
 
칼날을 긁는 불쾌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안드로이드 메테오의 칼이 향한 곳은,
 
WARRIOR:
명중 부위
왼쪽 다리
 
시야 한쪽으로 새빨간 무언가가 튀겨옵니다.
 
한쪽 다리가 무너지면, 당신의 시야 또한 아래로 내려옵니다.
 
안드로이드 메테오와 함께 옥상의 바닥에 손바닥이 철퍽 내려앉습니다.
 
아프고 싶지 않아, 한 순간에 스치는 생각이었습니다.
 
본능처럼 [얼음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네가 지키려고 했던 건, 남이 심어 놓은 정의 따위가 아니야.
나는 정의라는 게 어떤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
(푸른 장막을 뚫고 박혀드는 날붙이에서 익숙한 통증이 느껴진다. 중심을 잃고 무너지며 숨을 터뜨렸다.)
그래서 단언할 수 있어.
네가 수백 번을 죽고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을 만큼, 정의라는 건 원래 오점 투성이라고!!
 
메테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5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8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
 
단단하게 굳은 다리로 인해 통증이 줄어듭니다.
 
체력 2 감소합니다.
 
잇따라 오는 공격에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내비칩니다.
 
WARRIOR: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피해: 6
 
퍽,
 
안드로이드 메테오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집니다.
 
아니, 흉하게 녹아듭니다.
 
당신이 무릎을 굽혀 날린 주먹이 그를 녹아내리게 만듭니다.
 
그대로 드러누운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습니다.
 
몸통의 형상대로 깊게 파인 눈, 그리고 서서히 그의 모습이 묻힙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시계를 토해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파랗게 빛나는 점액질과 복잡다단한 태엽들...
 
아니, 아니군요. 착각했어요.
 
시계의 태엽은 크리쳐의 핵과 닮아 있지만, 굉장히 낡아빠져 있습니다.
 
무언가의 모조품인 것처럼 보이는 이것은 정말로 볼품 없어 보입니다.
 
당신은 이것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이건 파트너가 당신의 의지를 흉내낸 것이라고요.
 
제 2페이즈에 돌입합니다.
 
METEOR의 모든 판정에 보너스 주사위가 들어갑니다.
 
눈을 털고 일어난 메테오는, 다시 한번 단도를 빼듭니다.
 
당신의 턴.
 
메테오:...웃기지 말라더니, 누가 웃기고 있는 건지.
(헛웃음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 그때, 수정공이 말하길, 그만 좀 찾아오라고 했었지.)
(아마도 지난 세월, 자신은 이 건물을 찾아 같은 짓을 몇 번이고 시도했을 테다.)
(그러면서도 백 년이 지나도록 녀석이 그 꼴로 남아있다는 건.)
(이 머저리가 그 앞을 비켜주지 않은 탓이리라.)
(...고작 어젯밤 일인데도, 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을까. 아니지. 해 내야만 한다. 겨우 나 하나도 꺾지 못해서야, 너를 만나러 갈 체면이 서질 않는다. 주먹을 쥔 손이 아득하게 떨렸다.)
 
메테오:이런 것까지 따라해야겠어? 취향 안 변했네.
(허공을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듣고 있겠지. 네가 이 도시의 관리자라면.)
(클리셰 SF 영화 주인공이나 맞이할 것 같은, 비참한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었던 거라면.)
(내장이 터진 듯한 복부와 몇 개인가 어긋난 갈빗대, 체중을 받치지도 못하는 왼쪽 다리. 오늘따라 수복되는 속도조차 마음 같지 않았다. 넝마가 된 몸을 이끌고 떨어트렸던 단도를 천천히 주워 든다.)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단도
기준치: 75/37/15
고장: -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0
 
메테오: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클리셰 덩어리 영화는 그만 볼 때도 됐어.
한 번 정도는, 아무 고난도 없고, 매사 행복하게 굴러가고, 편하게 일이 풀리는... 그런 시시한 영화도 괜찮잖아. (손을 쥐면 장갑 틈으로 눈발에 탁해진 푸른빛이 맺혔다.)
(놈이 휘두르는 청광에 묻혀 미약한 색채가 번졌다. 덤비면 죽는다. 아마도 확실하게.)
(그러나 물러설 마음은 들지 않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몸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는 결과를 따져 가며 싸운 적이 있었나.)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덤벼드는 머저리가 되는 건 그런대로 적성에 맞았다. 공포조차도 전력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었지. 그 의지 하나만은, 눈앞의 자신도 마찬가지일 테다.)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3
 
METEOR:
단도
기준치: 75/37/15
굴림: 104626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극단적 성공
-1: 보통 성공
-2: 보통 성공
피해: 7
명중 부위
왼쪽 다리
 
팔을 뻗어 지른 단도가 사선으로 엇나가고, 그대로 안드로이드의 칼날이 상처를 짓이깁니다.
 
당신은 본능적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습니다.
 
안드로이드 메테오의 손목이 점차 녹아갑니다.
 
[얼음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으, 컥... 아, ....!!! (찢어진 살갗이 뭉개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와중에도 푸르게 타오르는 눈을 보고 있으면 번번이 짜증이 치밀었다.)
젠장, 알잖아, 네가 나라면, 적어도 날 가지고 만들어졌다면...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4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2
지금의 수정공은... 그라하는, 그대로 둘 수 없어....
아닌 건 아니라고, 위험한 건 안 된다고, 말해, 주기로, 했었잖아.
녀석은, 아직, 어리고... 네 탓으로, 크리쳐가 되었으니까... 너는... 큭, 그 곁에서...
 
메테오:녀석이, 이 도시에서, 평범하고 안전하게,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도록... 책임을, 지겠다고...
(울혈에 목이 막혀 기침을 거듭했다. 눈앞이 흐리게 부서지기 시작한다.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눈을 껌벅이고 나면 시야가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그렇게... 둘이서, 어떻게든 살아 가겠다고, 다짐했었잖아.
 
METEOR:... ...그래, 알고 있어. 수정공은 100년 전의 파트너와 너무나도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녀석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도 과거의 너였지.
너와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그는 이대로가 행복할 텐데.
단도
기준치: 75/37/15
굴림: 399117
+2: 어려운 성공
+1: 보통 성공
  0: 보통 성공
-1: 실패
-2: 실패
피해: 3
너는... 여전히 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건가?
 
메테오:당연한, 걸... 묻나. 역시, 지능은 그대로군.
단도
기준치: 75/37/15
고장: -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8
녀석이 행복한지 어떤지, 네가 어떻게 알아.
옆을, 지켜주지도... 못한 주제에, (핏물을 가득 뱉어냈다.) 머저리, 자식...
(눈앞이 번지는 통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손끝에 검신이 쥐여 있었던가. 우습게도 이런 순간에는, 그래,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더군.)
엇나간 줄 알았으면, 귀든 꼬리든 당겨 와서라도 고쳐 놨어야지.
 
메테오: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METEOR:윽... 난, 이곳에서... 무너질 수... ...!!
중앙 관리 체제는... 안 된단 말이다... ...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의 복부에는 단도가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신체의 곳곳이 녹아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문도 모를 능력 때문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잠시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헛웃음을 짓고 맙니다.
 
그는 차가운 옥상 바닥에 무릎을 꿇습니다.
 
엉망이 된 머리를 숙이고 서서히 무너져갑니다.
 
갈색 정수리와 낡은 톱니바퀴 위로 눈이 쌓입니다.
 
METEOR:...정말 중앙 관리 체제를 부술 건가?
안드로이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메테오:(곤죽이 된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기침하며, 옆의 안드로이드를 받침대 삼아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킨다.)
낙원 밖에도 사람은 살아가.
잃어본 적 없는 녀석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지.
라하와 함께했던 일 년이, 기계인 너조차도 잊지 못했을 만큼, 즐거웠던 이유는...
그게 언젠가 끝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
(난간에 기대 중심을 잡으며 비틀거렸다. 핏물에 젖은 고동색 머리카락, 볼품없이 흐트러진 군복, 옥상을 뒤덮는 눈과 푸른 야경.)
 
메테오:(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 어울리는군.)
 
METEOR:...하하.
 
관절이 엇나갑니다.
 
그것은 가동을 멈춰가며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METEOR:그들이 결정을 내린 거야. 아르버트도, 수정공도...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녀석들이지. 너와 나에게 남의 선택을 번복할 권리가 있어?
꿈을 꾸는 세계가 뭐가 나쁘지? 비참한 현실보단 꿈이 낫다는 생각 안 해?
...라고, 줄곧 생각했는데.
 
당신과 같은 신념은 아니지만, 안드로이드 메테오 역시 그가 생각한 정의를 위해 이곳을 지켜왔습니다.
 
어마어마한 연산을 거쳐 이뤄낸 허상의 도시, ‘평화’라는 하나의 꿈을 꾸고 있는 도시.
 
연출된 이상적인 세상의 위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메테오:놈들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건 내... ...우리 책임이야.
그러니 바로잡으러 가야지.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모르게 될 만큼 멍청한 선택이라면.
(간신히 고정시킨 시야 한켠에 푸르게 진동하는 장막이 보였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등에 매고 있던 총신을 난간 위로 고정시켰다.)
(언젠가, 오늘처럼 눈이 오던 옥상, 부축을 받으며 다짐했던 것들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녀석의 감시역이 되겠다, 허세를 부려가며 각오했었지.)
(내게 단 한 번의 죽음을 돌려준 파트너를 위해, 한 번뿐인 인간의 삶을 모조리 내거는 한이 있어도.)
(끝나지 않는 것들에 미련은 없다. 탄창이 익숙한 소리를 내며 장전하는 것을 확인했다. 식은 방아쇠 위에 검지를 걸고, 느리게 당긴다.)
 
메테오: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90/45/18
고장: -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피해: 13
 
탄환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총의 무게감이 가벼워집니다.
 
메테오:......이, 이게... 미쳤나?
 
위태롭던 당신의 총을 안드로이드 메테오가 손바닥에 함께 받칩니다.
 
부어오른 눈 사이로 푸른 빛이 새어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모두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지키려고 했던 중앙 관리 체제,
 
다시 한번 장벽을 뚫어볼까요, 메테오?
 
메테오:너... ...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수복되지 않은 갈비뼈가 울리는 것 같다.)
......그래, 그래야지.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90/45/18
고장: -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9
 
탕,
 
탄환이 마력 장벽에 꽂힙니다.
 
타격점으로부터 서서히 금이 가고, 곧 유리 조각이 깨지듯 쉴드는 박살이 나고 맙니다.
 
소멸하는 쉴드를 그는 숨을 헐떡이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METEOR:.. ...그래, 결국은... ...
너... ...아니, 메테오.
이걸 받아.
 
안드로이드 메테오는 품속에서 꺼낸 무언가를 당신에게 내밉니다.
 
METEOR:미고의 전언이다.
그 녀석... 이걸 나를 부수는 사람에게 전하라고 했어.
만나봐서 알겠지만, 수정공은 너를 너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 역시 ‘메테오’라고 인정받지 못했지만.
 
메테오:(내밀어진 물체를 멍하니 보다 받아든다. 미고?)
...이게 뭔데?
 
METEOR:나도 몰라.
 
당신의 안드로이드가 내민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빔프로젝터입니다.
 
메테오:(받고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야 명령대로 움직이는 안드로이드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네가 열어, 여길 부순 건 우리 둘이니까.
 
METEOR:...아니, 그건 네 거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엎어지듯 내려앉습니다.
 
METEOR: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이상하지 않아? 100년 전에 갑자기 사라진 크리쳐들.
그리고 아무리 죽여도, 심지어 불태워버려도 끊임없이 살아나는 너.
 
거친 숨을 토해냅니다.
 
METEOR:...하나만 묻자.
너는 내가 가짜라고 생각하겠지.
그렇다면 네가 진짜라고 생각하나?
 
메테오:글쎄... ...난 네가 가짜라고는 한 번도 한 적 없어.
내가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너도 나랑 같은 짓을 저질렀으니, 모르겠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내려앉는 몸을 부축하며 옥상 벽에 기대도록 했다.)
...무슨 꼴이든 살아만 있으면 된 거지. 맞은 곳이 쑤시고, 배도 고프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너스레나 떨고 있는 순간까지 가짜는 아닐 거 아냐.
응급처치
기준치: 75/37/15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메테오:좀 더 버텨. (전기가 튀는 회로를 되는대로 이어붙이며 고치는 시늉을 했다. 살릴 수는 없어도, 몇 분 정도는 끌 수 있겠지.)
(눈이 덮이지 않은 벽을 향해 빔프로젝터를 돌리고 이것저것 만져댔다.)
(작은 버튼을 발견하고 달칵, 소리가 나도록 누른다.)
너도 이 정도 보상은 받아야지. ...메테오.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간단하게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됩니다.
 
그 영상 속에서 입을 떼는 자는, 네, 뻔하지 않나요?
 
미고입니다.
 
-

 
미고:메테오 님께. 마침내 여기까지 도달하셨군요.
저는 지구에 남았습니다만, 그라하 님에게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제 존재 자체가 그라하 님에겐 위협이겠지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또 다른 강자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기기는 마지막 안드로이드가 회수해 당신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등 뒤에서 잠긴 문을 조금씩 비틀어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미고:이걸 보고 있다면 저는 이미 죽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고 있고요. 그런 당신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미 과거가 된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영상 속 미고는 후회 없이 편안한 표정입니다.
 
미고:당시의 저는 두 분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드리고자 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은 분명히 소원을 빌었습니다.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어요.
안타깝게도 당신에겐 육체가 남지 않았지만요. 그런고로, 그건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부순 악신은 사라져가며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가장 끔찍한 형태로요.
 
그에게 한 점 불안이 있다면, 그건 당신에게 전할 말을 전하지 못할까 봐 서두를 뿐입니다.
 
지금의 그에게 목숨이 아깝다는 감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미고: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크리쳐는 아자토스에 의해 한순간에 기화했습니다.
그리고 대기로 흩어져 당신의 영혼체와 결합했죠.
 
당신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벙찌더라도, 홀로그램 영상 속 미고는 덤덤하게 당신을 응시합니다.
 
지금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건가요?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육체일까요, 영혼일까요?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죠?
 
당신은 누구인가요?
 
메테오의 핸드아웃을 공개합니다.
 
메테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미고:이미 아실지 모르겠지만, 안전지대는 아자토스의 찌꺼기가 소멸한 이후에도 인간들끼리의 분쟁으로 인해 괴멸되었습니다.
그때, 그라하 님은 힘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소원은 들어드릴 수 있었지만,
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끼릭끼릭, 문고리를 마구잡이로 비트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미고:중앙 관리 체제, 그건 제가 직접 만든 시스템입니다. 재료는 방주와 아자토스의 찌꺼기였죠. 거기에 그라하 님의 눈을 사용해 그라하 님께서 힘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라하 님의 상태가 그렇게 피폐해져 있었을 줄은, 파훼된 아자토스의 찌꺼기가 그라하 님을 집어삼킬 줄은.
그 이후로 그라하 티아 님은 변했습니다. 제가 살해당한다면, 그 원인 역시 그라하 님이겠죠.
 
그라하 티아의 핸드아웃이 공개됩니다.
 
그라하
 
원숭이 발.
 
소원을 끔찍한 형태로 이루어준다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이것은 가장 절망적인 형태로 완성된 두 사람의 꿈입니다.
 
언젠가의 대화가 꿈결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미래를 기약하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웃고 떠들던 시절이 아득하게 멀어져갑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이 알던 그라하 티아는 이제 없습니다.
 
100년 전, 당신과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의 그림자만이 이곳에 홀로 남아 자신을 없애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미고:전 아직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무슨 소원을 빌지는 대략 예상이 가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빔프로젝터가 분해되며 하나의 탄환을 내밉니다.
 
끝부분이 열쇠처럼 생긴 그것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탄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고:쉴드를 부순다고 해도 중앙 관리 체제는 당신의 힘으로는 멈추지 않아요. 이 장치는 하나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짐작 가능한 범위 내인 것은...
그 장치가 가동을 멈추면 연결된 그라하 님 역시 죽어버립니다.
100년이나 흐른 지금, 체제와 그라하 님은 완전히 융합되었거든요.
 
그제야 당신은 생각해냅니다.
 
불쌍한 당신은 크리쳐의 몸을 빌려 그라하 티아를 막으려 했고, 그는 당신을 죽여버렸죠.
 
그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흩어진 재에서 지금의 몸으로 재생되었습니다.
 
그저 정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우리는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쿵,
 
마침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립니다.
 
뒤에서부터 느긋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미고는 온화하게 웃으며 녹화 종료 버튼에 손을 올립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입니다.
 
미고:저희의 시간은 인간과 다릅니다. 생명이나 목숨에 관한 견해 역시 그렇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요, 미고는 넘치는 지식욕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저 역시 미고답게 제 욕심을 채웠을 뿐이죠.
그래서, 저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종족의 수치라거나 모자란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처해서 이 거대한 흐름의 끝을 보고자 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뒤집힌 먹이사슬도 훌륭한 클리셰 이야기예요.
덕분에 원하는 만큼 지켜보았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영웅의 일대기에 한 획을 그은 자가 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미고:당신들을, 당신들이 그려내는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했어요.
 
"안녕히."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일그러진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홀로그램 영상은 그것으로 끝납니다.
 
-
 
안드로이드 메테오는 가동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빈 옥상에 홀로 남습니다.
 
깡통이 된 안드로이드와 빔프로젝터를 응시하고 있으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무와 깊은 고독이 찾아옵니다.
 
메테오:
SAN Roll
기준치: 62/31/12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감소합니다.
 
당신이 발을 옮기기 전, 분해된 빔프로젝터에 불이 들어옵니다.
 
영상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일그러졌지만, 목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립니다.
 
어떻게 못 알아듣겠어요, 이건 그라하의 목소리인데.
 
수정공과의 통화가 진행됩니다.
 
수정공: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잘 싸우고 있군.
다음은 X제약 회사겠지.
 
메테오:.........
 
수정공:그대가 슬슬 지루하지 않도록... 이쪽이 등장할 시기인 것 같아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메테오:(때로는 말로 옮기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그러니 다물고 있으려 했지만.)
네가 날뛰면 내가 쏴 주기로 했었지.
...눈... 오니까, 맞지 않게, 어디 들어가 있어.
 
수정공:그러지.
 
그 목소리는 지루한 기색을 숨기지 않습니다.
 
끝이 다가옵니다.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곳에서의 결투가 마지막 같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야말로 시작이었습니다.
 
탄환을 챙긴 당신은 통화 종료 후, X제약 회사로 향합니다.
 
...

 
...
 
회사를 향해 당신은 홀로 달립니다.
 
눈에 띄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거리는 안드로이드들이 바글바글합니다!
 
긴박한 지금 상태로는, 전부를 물리칠 수도 없겠어요.
 
안드로이드:적 발견, 신속히 협력 바람.
 
AOC 군복을 입고 있는 안드로이드 24명을 조우합니다.
 
메테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메테오:(달리는 내내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삐걱거렸다. 서 있는 것도 고작인 마당에, 말도 안 통하는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눈발은 계속해서 거세어졌고, 군복을 뒤덮은 핏물이 싸늘하게 피부에 들러붙는다. 엉망이 된 앞머리 사이로 겨우 안광만을 빛냈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7
(더는 녀석을 기다리게 할 수 없다. 적진의 중앙, 일격으로 가장 많은 놈들을 파훼할 수 있는 위치. 계산을 마치자마자 몸을 날린다.)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정체를 알 수 없던 힘의 근원. 하필이면 그토록 증오스럽던 크리쳐의 것이라 했다. 수없이 동료들을 앗아가고, 우리를 마모시키고, 추위 속에서 죽어나가도록 만들었던 그 힘이...)
 
메테오:(이제는 녀석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었다. 손을 쥐었다 펴는 순간, 손에 맺혀 있던 섬광이 푸른 검신을 이룬다.)
이딴 데서 허비할 시간... 없어.
 
하나, 둘. 안드로이드들에게 타격을 가합니다.
 
손에 닿아버린 것들은 전부 녹아내리고,
 
생체형 크리쳐를 조우한 것마냥 도망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닥에 드러눕거나 자리를 떠난 이들은 총 22명.
 
그러므로, 남아 있는 요원들은 고작 두 명입니다.
 
안드로이드:...녀석을 막아!!
명중 부위
 
안드로이드 하나가 당신의 배에 발길질을 날립니다.
 
체력 3 감소합니다.
 
그러나, 금속형 크리쳐의 힘이 당신의 몸을 맴돕니다.
 
본능처럼 [얼음의 방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1
 
굳건해진 육체가 피해를 차감합니다.
 
메테오:(...이래서 아슬아슬하게 남기면 안 된다니까. 뼈가 붙지도 않은 복부에 가해지는 충격에 진득한 핏물을 뱉어냈다.)
(반동으로 밀려나며 자세가 무너진다. 매고 있던 총기를 바닥에 짚어 가까스로 버티고 섰다.)
(조준점을 찾는 시야가 방전하듯 검은 색으로 번쩍인다. 이런 식으로는... 녀석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피해: 12
(...쥐고 있던 게 라이플이 아니었나?)
(더는 이성을 거쳐서 싸운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메테오:(부러진 뼈와 꺾인 사지로 짐승처럼 덤벼들었다. 총을 내던지고, 손에 박혀버린 푸른빛을 엉망으로 휘둘렀다. 거칠어진 숨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이명처럼 으스러진다. 이제 와서는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육신이었다. 다만 거기 새겨진 본능은, 꼭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8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
 
낡아빠진 주먹으로 두 사람을 때려눕힙니다.
 
명쾌한 퍽, 소리와 함께,
 
둘은 동시에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맙니다.
 
이미 쓰러져 있던 이들과 다를 것이 없도록 녹아내린 뺨이 붉습니다.
 
차게 식어 가는 안드로이드들을 두고, 당신은 정문을 열어젖힙니다.
 
...

 
X 제약은 공기업은 아니지만, 치료용 연고의 판매로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곳입니다.
 
X 제약 회사에 도착하면, 당신을 반기듯 모든 문은 열려 있습니다.
 
이곳 역시 테러 이후 체제의 힘으로 복구되어서 깨끗합니다.
 
이곳이라면...
 
'관리실', '지하 4층의 제약 연구실', '옥상' 정도의 장소들이 기억 나는군요.
 
메테오:(놀랍도록 그대로인 풍경이다. 땀과 핏물에 젖은 얼굴을 팔목으로 대강 닦아내며 걸음을 뗐다.)
(전신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오래는 못 돌아보겠군.)
...어떻게 할까?
(허공을 보며 말을 던진다. 대답을 기다리듯이 잠시간 뜸을 들이다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관리실 방향으로 이동했다.)
 
다친 왼쪽 다리를 끌어올리며 관리실을 향합니다.
 
...
 
변함없이 수십 대의 화면이 컴퓨터로부터 비춰지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을 놀리는 것처럼, 재생되는 CCTV 영상이 전부 ‘그 영상’으로 교체되어 있습니다.
 
영상 속 당신은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날뛰고, 그라하는 필사적으로 당신의 폭주를 막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과는 정반대인걸요.
 
그 외에도 저장된 다른 파일을 볼 수 있습니다.
 
파일을 넘겨 볼까요?
 
메테오:그라하 티아, 이 망할 놈...
(황당하다 못해 넋이 빠진 표정으로 영상을 노려보았다. 모니터 너머에서 터져흐르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를 보며, 감각이 사라진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펴 본다.)
(크리쳐의 몸이라는 건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지. 최강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쳐의 거죽을 뒤집어 쓴 대가로,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이 눅눅한 불쾌감에 무뎌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더 볼 게 있나? 영상을 천천히 넘겼다.)
 
건성으로 수천 개의 파일을 넘기던 당신은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합니다.
 
아주 옛날, 아르버트와 라미트의 영상입니다.
 
크리쳐와의 전투가 끝난 뒤 다친 아르버트를 끌고 온 라미트가 황급히 제약 회사 내부에 들어옵니다.
 
라미트는 미친 듯이 아르버트에게 쓸 약을 찾다가,
 
그가 결국 죽어버리자 괴로운 듯 옆에 주저앉습니다.
 
바보 같아요.
 
어차피 아르버트는 살아날 텐데.
 
두 사람을 보던 당신은 그라하와 함께하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분명 어쩔 수 없었던 거겠죠.
 
그만큼 소중했으니까.
 
아르버트와 라미트,
 
두 사람은 100년간 정말 행복했을까요.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메테오:(두 사람이 찍힌 영상을 보며 낮게 앓는 소리를 낸다. 그라하 티아가 처음 소생하던 날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찬거리를 사 와서, 난장판이 된 집안을 마주하고, 피냄새가 진동하는 침실을 보면서...)
(저런 표정이었던가. 라미트가 주저앉는 장면이 지나갈 무렵, 영상을 삭제하고 모니터를 꺼 버렸다.)
지하 4층이었지. 가자.
 
끊어질 듯한 배를 감싸고 지하 4층 제약 연구실을 향합니다.
 
...
 
남자가 엎드린 채 죽어있던 테이블, 편지를 발견했던 서랍, 전투를 펼쳤던 바닥.
 
무엇 하나 흔적도 남지 않은 장소입니다.
 
엎드려 있던 남자 대신, 작은 약통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습니다.
 
얼핏 보아하니... 효력이 강한 회복제인 것 같습니다.
 
메테오:(약통을 집어들고 뚜껑을 돌린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아귀로는 두어 번 헛돌고 말았다. 이걸 치워버리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통의 옆면을 테이블 위로 내던져 부숴버렸다.)
(갈라진 틈으로 쏟아진 알약을 잡히는 대로 입 안에 털어넣는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그라하 티아가 주스를 건넸던 것 같은데.
 
방식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당신은 기력을 채웁니다.
 
모든 체력을 회복합니다.
 
또한, 옥상에 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인물을 향해서.
 
메테오:(급하게 넘긴 알약이 목에 걸리는 느낌에 콜록거렸다. 이제는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할 녀석도 없군.)
(끝까지 삼키고 나면 몽롱하던 정신이 빠르게 또렷해졌다. 더디게 붙어가던 뼈들이 알아서 제 위치로 맞춰지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몸이 기이하게 가벼워진 것도 같았다. 피딱지가 앉은 뺨을 손등으로 털어내며, 비상계단이 있는 복도로 향했다.)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옥상을 향합니다.
 
위로, 위로,
 
좀 더...
 
위로.
 
...
 
활짝 열린 문.
 
사방에 눈이 쌓여 질리도록 새하얗습니다.
 
이곳은 건물의 옥상,
 
아득하게 휘몰아치는 검은 눈보라 아래로 야경이 빛나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어둠이 잠식한 도시의 야경은 어쩐지 위태롭고 쓸쓸합니다.
 
아, 이번에 보이는 것은 뒤통수가 아니었습니다.
 
옥상 난간에 기댄 그라하가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당신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렸던 것만 같아요.
 
그의 등 뒤로 불길한 빛을 뿜는 박스가 보입니다.
 
인사합시다.
 
메테오:들어가 있으라니까.
...춥잖아.
(숨이 달리는 느낌. 어쩌면 막히는 느낌.)
(아무렇지 않은 척, 굴어보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싸늘하게 보지 마. 중얼거리며 이를 악문다.)
 
수정공:춥잖아. 이 말만 34번째 듣는 것 같군.
별다른 할 말은 더 이상 없는 건가?
그러나 다시 말해주지. 나는 모두에게 관대해야 하는 안전지대의 관리자니까.
...나를 걱정하는 거라면 말이야. 몇 분, 몇 초를 낭비하지 않고 서둘러 전투를 끝내주었으면 해.
그대를 상대한 뒤에도 해치워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
 
메테오:서른네 번째... ...꽤 자세하네.
기왕 관대하게 굴어줄 거면 몇 개만 더 답해줘.
...감기는 안 걸리는 몸인가?
다치면 아프기는 하겠지?
밥은 먹는 시늉만 했었나. 잠도 제대로 안 자는 것 같고.
어차피 오늘은 그 일 못 할 거야. 연락해서 못 간다고 전해.
 
수정공은 사선으로 고개를 돌리고 코웃음을 칩니다.
 
수정공:감기는 걸리지 않는가, 다치면 아픈가, 잠은 제대로 자는가...
...이런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어차피 나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제약 회사의 옥상까지 도달한 것이 아니었나. 중앙 관리 체제를 터뜨리고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겠지.
100년간 쌓아올린 나의 의무를 모조리 쓰러뜨리려는 악의를 가지고 말이다.
 
메테오:말장난 하지 마.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놈을 죽이고, 사람들의 희망을 가지고 놀고, 끝도 없는 환상에나 가둬 놓는 게 어떻게 안전이야?
(쥐고 있던 주먹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눈앞의 이 녀석은 그라하 티아가 결코 하지 않을 소리를 하고, 결코 바라지 않을 것들을 바란다. 붉게 타는 눈동자와, 망설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녀석의 의지. 여태 부정하고 있었던 현실이었는데.)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
네 방식도 아니지.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았어.
... ...
 
메테오:... ... (소리를 만들 수가 없다. 목이 메이는 이유가 다 뱉지 못한 핏물 때문인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치는 심장 때문인지...) ...아, 하는, ...사람이 걱정되는 건 당연하잖아.
네가 뭐든, 난 널 구하고 싶다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제길, 내가 어떻게든 도울 테니까......!!
 
수정공:그대야말로 실체가 없는 헛된 공상 속에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희망을 가지고 노는 것은 늘 참담한 현실이었지. 안전지대의 시민들에게 마법과도 같은 베일을 씌워준 게 고작 장난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대에게 일깨워주도록 하지.
어째서 과거의 내가 그토록 구하고 싶었던 '클리셰 세계'가 무너져 내렸는지는 알고 있나?
EOC, 그대와 같이 강력한 크리쳐를 숭배하며 신격화했던 종교 단체. ...그들의 교리는 이것이었다.'뻔한 세계의 종말이 도래하며, 멸망의 종자인 크리쳐를 따른 자들은 마침내 신인류로 다시 태어나리라', 100년 전에 듣더라도 우스운 얘기였어.
 
메테오:나는 안 웃겨. 종일 비참한 전개만 반복하는 세계는 망해야지.
...재미 없는 영화가 망하는 거랑 다를 바 없지 않나. 삶은 영화처럼 뻔하지 않잖아. 살다 보면 반복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생겨.
그런 재미 없는 전개를 반복하려고 하면... ...그래, 지루해질 거야. 지금 네가 그렇듯이.
(피맛이 나는 입가를 닦아냈다. 그날 나는 고작 산타가 되고 싶었어. 신인류를 이끄는 교주 따위는 되고 싶지도 않았다고. 매고 있던 총기를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수정공. 여기서 나를 만나는 건 몇 번째지?
 
수정공: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안전지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헛소리를 교리로 삼는 반란분자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
만남을 거듭했던 횟수는 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야. 무기를 던진 것을 보아하니, 이제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가.
그대가 목숨을 바쳐 지켜냈던 안전지대도... 결국은 사람의 손에 멸망하고 말았어. 그러니 이 도시에는 내가 필요해. 사람들의 불행을 영원히 소멸시킬 수 있도록.
 
메테오:아니, 널 상대로 저것까지 쓰고 싶진 않거든...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 해 놓고, 정작 나는 네게 횟수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죽었다는 말인가. (말을 뱉어놓고도 뒷맛이 쓰다. 도시의 불빛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름 애썼어. 제정신도 아닌 상태로, 사람들을 어떻게든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봐라, 꿈이 꿈이라는 걸 알아버린 이상, 그건 언젠가는 끝나야만 해.
불행이 없는 세계라는 건 있을 수도 없어... ...그러니 다들 영화 속 누군가의 불행을 보면서 자기 일처럼 응원하게 되는 걸 테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다.)
기억하나? 같이 봤던 영화 중에 비슷한 게 있었잖아.
 
메테오:네가 이 장소를 골라 준 덕분에 마침, 약을 먹고 왔는데.
그것도 하필 붉은 색이었다.
이제 꿈 속으로는 못 돌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도시의 야경과, 네 눈의 빛깔에 홀려 내리고 말았던 멍청한 선택.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될 줄 알았어.)
싸울 거지, 네 고집은 못 꺾는 거 알아. 그래도 알아 둬라. 이번엔 다를 거야.
수정공:더 이상 클리셰 영화에는 관심 없어.
비슷한 매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절차를 밟고는 했지. 가지고 있던 행복을 사소한 계기로 모조리 잃게 되면, 세계를 구할 영웅이 나타나서 소중한 것들을 도로 되찾고 말아. 그리고... 영웅이라는 대가를 바친 모두가 행복해지지.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안전지대는, 역시나 영화 속의 클리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대도 나의 말에 동의할 때가 있었을 거다. 비극과 고통을 반복하는 일은 픽션일 때나 재미있는 거라고.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수정공: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나는 어떠한 짓이라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무언가 다르길 바랄게."
 
낮게 읊조린 수정공은 양손에 너클을 끼웁니다.
 
수정공:총을 쓰지 않을 거라면, 그 기대에 부응해 보지.
 
최강의 인류를 대할 때는 약식 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반격과 회피가 가능합니다.
 
쉴드 파괴에는 오로지 라이플을 사용할 수 있으며, 한 턴을 소모합니다.
 
쉴드를 부순 뒤 관리 체제에 열쇠 탄환을 꽂을 수 있습니다.
 
열쇠 탄환은 별다른 판정 없이 선언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이곳은 제약 회사의 옥상, 둘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심리적 저항이 없는 그라하 티아가 선공을 가져갑니다.
 
battle
 
수정공:
너클
기준치: 75/37/15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
 
굉음이 울리고, 허수아비가 쓰러지는 것처럼 무기력한 퍽! 소리와 함께,
 
당신의 세상이 한 번 크게 뒤집히더니, 어느덧 그라하 티아는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반격 및 회피가 가능합니다.
 
메테오:(반전하는 시야 저편, 잿빛 눈이 내리는 하늘을 덮고 질리도록 붉은 형체가 아른거린다.)
(생사의 기로에서는 단 한 번도 말을 듣지 않았지만, 언제나 믿음직스러웠던... 나의 하나뿐인 파트너.)
(어젯밤의 너라면 이해했을 텐데. 이 도시를 지킨다는 것과 이 도시를 부순다는 것. 그건 결국 같은 의미였어.)
(그러니, 너를 지킨다는 건......)
...망할 놈, 정신 차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874922
+2: 어려운 성공
+1: 보통 성공
  0: 실패
-1: 실패
-2: 실패
피해: 4
 
옥상의 바닥에 드러누운 당신은 그의 손목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그라하는 단숨에 팔을 빼낸 뒤 손에 종속된 너클로 얼굴을 강타합니다.
 
얼어붙은 금속성이 코끝을 저릿하게 만듭니다.
 
눈앞에 어려 오는 그라하의 형상이 아렴풋하게 다가옵니다.
 
혈향이 도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즈음, 그가 입을 엽니다.
 
수정공:결국 인간은 변화한다. 과거 안전지대의 사람들이 도시를 무너뜨렸듯, 그대가 믿고 의지하던 나조차 변해버렸지.
그러니 영원을 빌려 자리를 지킬 독재자가 필요한 거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도시가 행복하게 남아 있을 수 있도록. 그건... 그대의 뜻과도 반하지 않아.
 
메테오:아프게도... 때, 리네. (핏물 섞인 침을 뱉었다. 콧등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 같다. 무릎을 세워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똑바로 봐라. 이 도시는, 행복하지 않아. 아무것도 변하질 않으니 다들 질리고 만 거지.
사람은 변해. ...변하지. 나만 해도, 누구 덕분에... 씀씀이부터 영화 취향, 이상형까지 바뀌었다고.
그렇게 변해야 재미가 있는 거 아냐? 응원하는 맛도 날 테고.
우리가 지냈던 일 년 중에도... 완전히 똑같은 하루는, 한 번도 없었어. (으스러지도록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즐거웠던 거야. 언젠가 끝난다는 걸 알고, 그 소중함을 알고, 비슷한 흐름 속에서도 반복되지는 않았던 나날.)
(며칠에 한 번씩 네가 사고를 치고, 주말이면 새로운 영화를 보고, 두어 달 간격으로 이사를 다니던 일들도.)
 
메테오:(그런 일상을 지금 이 도시에서 찾을 수는 없겠지.)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 너를 멈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세계는 돌아오지 않을 텐데. 그것들은 이미 사라졌고, 눈앞의 네가 너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도, 네가 쌓아올린 세계를 이토록 부정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네가 만든 세계는 어지간한 B급 영화보다 재미가 없어.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7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2
 
수정공:
너클
기준치: 75/37/15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
 
으직,
 
손목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귀를 울립니다.

 
그는 지루하다는 듯 손가락 사이에 새로운 너클을 끼워 넣습니다.
 
금속이 손 마디와 맞물려 도심의 빛을 반사합니다.
 
여전히 도시에 내리는 눈은 그치질 않습니다.

 

 
수정공:그런 망가져 가는 세계에 남아 있느니 새로운 세상에서 즐겁게 살고 싶거든.
그대가 영웅 노릇을 마쳤을 무렵에도 여전히 전쟁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인간들은 서로 약탈하고 죽이느라 여념이 없었고 희망은 모조리 불타버렸지.
다들 절망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 세계는 이제 끝났다고, 인간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그렇게... 유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란 말이다.
쉽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넘어지고...
강자가 다시 일으켜 세운 존재들마저 나약함에 스러져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들지.
 
퍽, 뺨에서 뜨거운 혈기가 느껴집니다.
 
수정공: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더 이상 B급 영화의 재미를 추구하기에는, 도저히 그들을 신뢰할 수가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어.
그러니 그들이 원하는 광경을 허상으로나마 바라보도록 만들자. 어린 시절부터 끔찍하게도 불태우던 이념인데... 그대의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군.
 
수정공이 '활'을 연상합니다.
 
그렇다면, 체제가 그 형태를 즉시 재현합니다.
 
수정공의 손에 묶여 있던 너클이 활로 모습을 바꿉니다.
 
수정공:
화살
기준치: 85/42/17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3
 
메테오: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얼음의 방패
기준치: 100/50/20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
(피하지 못한 화살이 팔뚝에 박혀들었다. 망설임이 남은 탓인가, 저리게 쑤셔 오는 통증에 신음을 터뜨렸다.)
못 보던... 기술도 쓰네. 백 년이 길긴 길었던 모양이지?
이런 건 변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자랐다고 하는 거야, 많이 늘었는걸.
네가 절망했다는 건 알겠다. 내가 아는 그라하 티아라면, 겨우 이 정도에 꺾이지는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있었으니까, 그래. 최강이다 뭐다 해도, 우리도 결국에는 인간이었지.
 
단단하게 만든 껍데기가 활촉이 비틀어지도록 만듭니다.
 
줄을 당겨 매끄러운 곡선을 조성하고, 당신을 조준하던 그 시선에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부추기듯 두드리는 심장 고동 소리에 맞춰, 매끄럽게 돌아가는 중앙 관리 체제가 빛을 뿜어냅니다.
 
수정공:...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추억팔이를 하기에는 이미 늦었어, 메테오.
 
메테오:(추억팔이, 하는 말에 동공이 크게 흔들린다. 크리쳐의 힘으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었다면, 당장 심장부터 단단하게 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기는 무슨.......
(역시 안 되겠어. 어떻게 움직이든 망설임이 섞이고 만다. ...이 상태로는 시간만 버릴 뿐이다.)
(시야 구석에 던져 놓았던 라이플이 보였다. 녀석의 본체는 쉴드 너머로 돌아가는 중앙 관리 체제. 목표는 폭주하는 파트너를 멈추는 것. 어딜 노리든 결과는 다를 게 없다.)
(팔에 꽂혀 있던 불길한 빛의 화살을 뽑아내고, 바닥의 라이플을 향해 달린다. 손끝에 익숙한 쇠의 차가움이 느껴지자마자, 본능처럼 장전을 마쳤다.)
혼자 남으면 두렵고,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절망하고, 불안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기도 하고. 그렇게 엉망인 게 우리야.
 
메테오:...심지어는 고릿적 신화나 고전 소설, 히어로 영화를 봐도 그렇지.
그러니 팀을 짜기도 하고, 파트너를 만들기도 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거다!!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90/45/18
고장: -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6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라이플을 손에 쥔 당신,
 
박스를 감싸고 있는 쉴드를 목표점으로 하여 총기를 겨눕니다.
 
중앙 관리 체제는 당신을 조롱하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갈 뿐입니다.
 
탕,
 
쉴드를 향해 대 크리쳐 살상 탄환을 발사할 때였습니다.
 
수정공:
화살
기준치: 85/42/17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6
 
거리가 멀어진 그라하 티아가 당신을 과녁으로 두며 활을 잡은 팔에 힘을 줍니다.
 
그가 손을 놓으면 화살 하나가 눈발 사이를 세차게 가릅니다.
 
당신의 찢긴 소매에 아슬하게 활이 꽂히고, 탄환의 궤적이 어그러지며 공중에서 소멸합니다.
 
눈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탄환이 거짓말 같습니다.
 
그리고, 옥상에 놓인 자신의 상황 또한 믿기지 않습니다.
 
메테오:......방금 건 뭐야. 위협 사격인가?
 
쉴드를 부수기 위해선 사격에 요하는 좀 더 정확한 명중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정공:감기에 걸리지 않냐고 물었던 게 몇 분 전이었는데.
...또 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고 마는군. 지겨울 정도로 그대가 똑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 말이다!
나에게서 바라는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니 쉴드를 박살내려 하고, 임무에 실패해 가슴과 배, 혹은 목을 관통당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지. 그것이 그대가 그렇게 즐겨 말하던 '클리셰'였던가?
이번에는 어떤 무기로 패배를 인정하게 될지 궁금해지는군그래...!
 
수정공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방해공작을 놓기 위해,
 
이번에는 활과 화살이 '검'으로 재현됩니다.
 
수정공:도대체 이 전투에서 달라진 게 뭐가 있다는 건가! 무작정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이 제 목숨을 저버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하면서, 끈질기게 잘못된 이상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들지...!
기준치: 75/37/15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메테오:헛소리 마라. 네가 죽인  중에, 패배를 인정한 는 한 명도 없었을걸.
(총기를 벽면으로 밀고,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한 힘을 휘둘러 달려드는 검날을 맞받아친다.)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피해: 3
눈의 검
기준치: 100/50/20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5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 들었다가도, 손끝에 맺혀 있던 힘이 뻗어나가는 감각에 전율했다. 여상하게 인간을 말하고는 있지만, 이런 신체를... 역시 인간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확신은 있었다. 눈앞의 악의를 부정하고 싶고,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목이 타고, 어떻게든 옛날 일을 떠올리려 하는 건... 인간만이 가지는 흠집일 테니까.)
 
메테오: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는 나도 싫었어. 그런데... 누구 덕분에, 본의도 아니게 매주 보다 보니까.
그게 어떤, 녀석이든... 응원하게 되더라. 마지막에는 멋진 결말을 맞이하기를 바라게 되고...
뻔하지만, 젠장, 그렇지만... ...
......나는 그 뻔한 여정 끝에, 평범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좋았어.
망가져 가는 세계에서도, 우리는... 살고 싶었잖아. 내일을 보고 싶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고, 평범한 하루를, 희망을... 어떻게든, 찾고 싶었어.
그 이상이 잘못되었다는 건가?
 
화살에 꿰뚫렸던 팔뚝이 다시 단단해지면, 똑같은 부위로 검날을 막아냅니다.
 
상처를 입고 아문 곳은 이전보다 훨씬 더 딱딱해집니다.
 
마치 삶의 노정처럼, 우리가 함께했던 짧은 기간처럼.
 
검을 거두게 만든 뒤에는 당신의 주먹이 그라하 티아를 향합니다.
 
그라하는 빠르게 얼굴을 옆으로 내빼 보지만, 바람을 타고 앞서 나간 손등이 그의 뺨을 스칩니다.
 
안대에 덮인 얼굴은 굳어버립니다.
 
한쪽만 남은 눈을 굴려 일부가 녹아버린 자신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일말의 죄책감이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것도 잠시.
 
그의 얼굴로부터 흔적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합니다.
 
그라하 티아는 체력 1을 회복합니다.
 
수정공:그렇다면 지금 패배를 인정하게끔 만들어주지. 더 이상 안전지대를 위협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게끔!
 
메테오:백 년 동안 인간 하나도 제대로 못 죽였으면서, 말이 많네.
 
수정공:아니, 그대는 인간이 아니다.
그대의 정체와 무관하게... 한 가지 사실이 남아 있긴 하지.
평화를 되찾은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대를 응원하지 않아. 이 도시에는 영웅은 필요 없어.
 
그라하는 장갑 위로 자신의 뺨을 훔칩니다.
 
수정공:이 정도의 생채기는... 처음인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린 것도 같습니다.
 
메테오:다를 거라고 했잖아. 못 믿었나?
오늘은 영웅이 되려는 게 아니야. 애초부터 그런 적도 없었지만...
필요 따위로 움직이던 시절은 백 년 전에 지났거든. 오늘은 너 하나 구하면 임무 끝. 집에 갈 거다.
...그러니까 얌전히 응원이나 하고 있어.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90/45/18
고장: -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12
 
이런! 굴림:8이라니, 근사한 <극단적 성공>입니다.
 
수정공:
클리셰 파괴
기준치: 100/50/20
굴림: 9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9
 
수정공이 굴린 1d9 다이스로, 당신의 다이스가 98로 수정됩니다.
 
대실패입니다!
 
완곡하게 궤적을 그리던 탄환이 피식,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맙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논리라는 개념이 꼭 부정되는 것만 같아요.
 
분명 이 정도 조준으로 쉴드를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았는데도요.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그라하에게 턴을 줍니다.
 
그의 손에서 검이 사라지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무기가 재현됩니다.
 
이번에는 '대 크리쳐 살상탄'.
 
메테오:갈수록... (넋을 뺀 채 한숨을 터뜨렸다.) ...돌아버리겠네.
 
수정공:크리쳐에게 크리쳐용 탄환을 쓰는 건 룰에 위반되지 않겠지.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85/42/17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4
 
메테오:기껏 굴려놓은 주사위도 어질렀으면서, 룰 같은 소리 한다!!
매번 이런 식이지. (이 빌어먹을 클리셰, 발버둥칠수록 멀어져만 가는 세계와 흐름. 진부할 정도로 악의적인 전개.)
(누군지도 모를 것들이 짜 놓은 판에서, 겨우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이번에도 우리를 비웃고만 있었다. 차원을 넘어 어딘가 안락한 곳에 틀어앉아, 어떠한 설명도 내어주지 않은 채.)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장전 소리와 함께 탕! 여러 방향으로 탄환이 분사됩니다.
 
라이플의 구멍이 당신을 향합니다.
 
그 뒤로는 흩날리는 땋은 머리,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부는 바람과 내리는 눈,
 
그것들로만 이루어진 전부 잿빛인 세계에서…
 
홀로 붉은 색인.
 
아니,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좋지만, 당신은 다시 한번 소원을 떠올립니다.
 
눈이 묻힌 바닥을 전신으로 구르며 총알을 회피합니다.
 
몸을 돌릴 때마다 차가운 눈덩이가 우수수 쏟아지고, 당신의 손에서 라이플이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수정공:100년 뒤가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나는, 나는 그저 맡은 바를 다할 뿐이니까...!
 
메테오:네가 맡은 바에는 아마... 나도 포함되어 있었을걸. (넋을 뺀 채 붉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광경을 지켜본다. 이런 말을 한다고 네가 들어주지는 않을 테지만.)
총 내려. 날 지키겠다고 장담한 건 그새 잊었나?
(한 번이라도 좋아. 이 세계가 말을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90/45/18
고장: -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13
 
수정공:나에게 그대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테러리스트를 보좌하는 관리자라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그라하는 총구로 당신을 겨누는 대신, 총의 몸체를 굳게 붙잡습니다.
 
수정공:
비무장
기준치: 75/37/15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피해: 2
 
총을 휘둘러 당신을 타격하려 들지만, 방아쇠를 당긴 당신의 검지가 우선이었습니다.
 
부드럽게 유영하며, 그러나 올곧게 직선을 그리며 대기 중으로 날아간 탄환은... 탕!
 
불쾌한 박스를 감싼 마력 장벽을 뒤흔듭니다.
 
당신은 방금의 공격으로 결계의 힘이 좀 더 약해진 것을 깨닫습니다.
 
메테오:글쎄... 네 몸은 날 지키고 싶나 본데.
 
수정공:젠장, 안전지대를 수호하는 것, 그 정의에 오점은 없단 말이다...!!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85/42/17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20
 
메테오:(괜히 도발했군. 난감하게 웃으며 몸을 숙였다.)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정말로... 끝이다."
 
철컥,
 
당신을 향한 시선이 가슴을 콕콕 쑤시게 만듭니다.
 
칠흑과도 같은 새까만 총구의 안쪽 너머로 희망의 불빛이 사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메테오:...그렇게 싸늘하게 보지 말라니까.
 
수정공:이번에도 특별할 건 없었군.
 
그 말을 끝으로, 강력한 통증이 당신의 가슴을 뒤흔듭니다.
 
문득, 당신은 가슴이 허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이를테면 심장이라거나.
 
오로지 휑한 구멍이 붉고 끈적한 액체를 토해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려는 의지가 당신에게 남아있다면.
 
게임을 이어나갈 의지가 있다면, 메테오는 즉시 소생합니다.
 
전체 체력을 회복합니다.
 
당신에게 턴이 주어집니다.
 
메테오:컥... ......!! (인상을 구겼다가 펴며 중심을 잡는다. 숨이 달리는 느낌에 몇 번 기침을 거듭했다.)
(기적처럼 수복되는 신체에 놀랄 여유도 없이,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상체를 날려 나동그라져 있던 총대를 붙들었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을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깨질듯이 지끈거리는 머리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드디어 해 볼 만하다', 응원하는 말이 들렸다.)
(신체가 경쾌할 정도로 가벼웠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네가 가르쳐 준 거였나.)
하나... 달, ...라졌지. ...어때?
 
수정공:...어떻게... 이 자리에서 즉시 소생할 수 있었던 거지?
 
메테오: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넌 모르겠지만, 이 도시에도 날 응원해 주는 사람은 있거든.
 
수정공:어떻게든 된다라니, 그건 그저 사람들이 '꿈'이나 '이상'이라고 부르는 일들뿐이라고...!
 
메테오: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흐릿하게 시선을 뜬 순간, 당신의 신체 일부가 금속형 크리쳐, 혹은 생체형 크리쳐로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팔다리를 확인해 보면 여전히 당신은 당신입니다.
 
메테오:이상을 좇는 게 언제부터 나쁜 일이었어? 꿈을 꾸는 것도...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
현실에 발을 대고 살면서... 일어나야 할 때를 알고 꾸는 꿈은, 난 반대한 적 없다.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했었잖아. 너는 책을 보는 걸 좋아했으니 도서관에서 밤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든, 대학을 가서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든.
그놈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고집을 꺾지 않는...
그런 너를 좋아했던 거라고.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90/45/18
고장: -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1
 
소생을 마친 당신은 대 크리쳐 살상탄을 발사합니다.
 
메테오:(오점 없는 정의라, 이제 와서는 우스울 뿐이다. 그 오점을 제거하기 위해 스러져간 목숨들, 엇나갔던 사람들, 무너질 뻔한 세계. 그건 어떤 명분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어떻게든 움직이는 사지로 총기를 거머쥐고, 서늘한 방아쇠에 검지를 얹는다. 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정의를 찾아?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승부를 걸 때와 변함없는 낯짝으로, 하얀 잇몸을 보이면서.)
 
잿빛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탄환은 도시의 푸른 빛을 반사합니다.
 
그것이 도시의 형광 때문인지, 당신의 색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탕,
 
당신은 이 세계에 관하여 여전히 정의를 내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신의 정의란 도시에 내리는 거센 눈길처럼 한치도 예상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현재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보호 장막을 잃은 중앙 관리 체제가 선연하게 사방으로 빛을 발산합니다.
 
마치, 당신의 다음 행동을 촉구하는 것처럼.
 
열쇠 탄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정공: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 그리고 중앙 관리 체제는 움직인다...! 무한대에 가까운 전력이 설령 모두의 미소를 '연출'할 뿐일지라도!
 
수정공:그러니... 그만둬,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깨트리지 말아주게! 완벽한 해피엔딩을 내버려 둬, 메테오...!
 
메테오:이딴 건 해피엔딩이 아니야.
...적어도 너한테는, 그라하 티아.
네가 나를 죽일 때마다 짓던 표정,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걸핏하면 빗나가던 총알들, 망할,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진부한 결말이 현실에서는 가장 찾아보기 힘들지. 그래, 알아. 그래서 완벽한 해피엔딩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어. 그런데... 지금 네 꼴을 봐라.
무언가를 희생해서 지켜내겠다는... ...그 방식은 버릴 거야.
같이 가자. 두렵다면 함께 해 주지.
 
수정공:...아니, 틀렸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
지금이라면 그대도 알고 있겠지. 안전지대의 바깥이나 지하 감옥에 내던진 시민들의 존재를.
줄곧 동경해왔던 그대마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신을 무찌르지 않았나! 나는 그 사건에 대해 꽤 깊은 감명을 받았거든...!
100년 전처럼... 한 번밖에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
나를 포함한 모두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면, 지금 여기서 총을 버리도록 해.
 
메테오:(변함없기를 기대했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아침 메뉴를 두고 다투거나, 별난 짓거리로 투정하던 나날들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이 세계가 그렇게 친절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 정도는 편하게 일이 풀리지 않을까 싶었어.)
(그래도 역시 사과부터 했어야 했나. 솔직해지는 게 두려웠던 나와 멍청할 정도로 순수했던 너.)
(제법 죽이 잘 맞긴 했어도, 이 세계가 이어지는 이상 우리는 이런 식일 수밖에 없겠지.)
......
(담벽색 빛깔이 퍼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전한 위치에 자리한 시계탑에서는 시침이 자정을 넘어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메테오:(이번에야말로 모두를 위한 산타가 될 시간이군. 끝자락이 갈라진 탄환을 장전하며, 불안 섞인 눈동자를 새파랗게 빛낸다.)
싫다, 방해하지 마.
 
수정공:나약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에게, 돌아오는 성탄절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언제나 성탄절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세계를...!
나는... 모두의 염원을 짊어진 대행자로서 바라고, 원하고, 갈망하고, 소망했단 말이다...!!
 
중앙 관리 체제는 모두의 소망을 먹고 배를 불립니다.
 
수정공의 힘, 그리고 안전지대의 힘.
 
이 좁디 좁은 장소가 그렇게나 강력했던 것은...
 
행복을 향한 소망의 농도가 짙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라면.
 
'그라하 티아'를 위해서라면, 모두에게 진실을 발포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것이 비극적인 희생만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거대한 중앙 관리 체제의 잔광 사이로 드문드문 잿빛 눈이 내립니다.
 
메테오:매일이 크리스마스라면... 아무도 산타를 기다리지 않을걸.
(장전을 마친 총구를 하늘의 중앙을 향해 겨누었다. 탄환의 빛을 받아 강청색으로 빛나는 총신을 쥐고, 핏물로 흐트러진 시야 사이로 조준점을 찾는다.)
(클리셰처럼 찾아오는 연말, 번번이 엉망이었던 크리스마스. 사람들은 행복을 이야기하고,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고...)
(한 번 정도는 둘이서 보내보고 싶었어. 동료들을 불러 파티라도 하면서.)
너한테서 받기로 한 선물도 못 받겠지...
(방아쇠를 당기면 서걱이는 소리가 났다. 탄피가 흩어지고, 총기를 내려놓는 순간, 좁아진 시야와 하늘 사이에 유난히도 붉은 녀석이 보였다.)
 
메테오:(눈이 마주친다. 둔탁하게 시선이 흔들렸다. 이럴 때는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도 소리를 만들 수가 없었다. ...이 너머에 네가 있다면, 입모양만으로도 이 정도는 읽어낼 수 있겠지.)
(예감도, 확신도 아닌, 언젠가 맺었던 빈약한 약속을 중얼거린다. 멈추지 않겠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나는 너를 믿을 뿐이다.)
(믿고, 또 바라는 것.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 그것들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통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괜찮아. 우린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탕!
 
상자를 향해 열쇠 탄환이 발포됩니다.
 
한 순간,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며 두 명 몫의 시선이 체제를 향합니다.
 
열쇠가 맞아 떨어지듯, 잠겨 있던 문이 열리듯 중앙 관리 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수정공:안... 돼...!!!
 
위태로운 표정이 된 그라하의 몸이 휘청거립니다.
 
지탱할 무언가를 모색하기 위해 손끝을 더듬거리다, 기어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주저앉습니다.
 
메테오:
듣기
기준치: 75/37/15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당신의 귀에 맴돕니다.
 
“어째서 그날 죽은 게 내가 아닌 그대였을까.”
 
...

 
끼릭.
 
하늘 높이 걸려있던 체제가 멈추며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나의 별이 수명을 다해 아래로 추락하듯, 긴 조명이 꼬리처럼 달라붙습니다.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굉음과 함께, 착륙 지점 주변으로 둥글게 바람이 퍼져나갑니다.
 
당신과 그라하의 옷자락과 머리카락 역시 크게 휘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따스한 바람입니다.
 
그와 동시에 안전지대를 이루고 있던 하나의 가짜 세계가 부서집니다.
 
화려한 조명이 흩어지며 검게 그을린 회색 벽이 드러나고, 관리 체제로 이루어진 것들이 붕괴합니다.
 
새하얀 빛이 번지며, 당신은 모든 것의 끝을 예감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팔을 붙잡습니다.
 
그라하 티아입니다.
 
수명을 다한 그라하 역시 빛에 휩싸여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100년 전과 달리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수정공:...고맙다.
그대는... 정말 열심히 싸워줬어.
 
메테오:그만 말해.
(무너지는 몸을 다급하게 받쳐 안았다. 세트장도 다 무너진 마당에, 죽어가는 놈을 두고 여유롭게 인사나 하라니. 이게 아직도 영화인 줄 알아?)
(품에 두기에는 울음이 나올 정도로 작은 몸이었다. 끌어안으면 두 귀가 가슴에 닿고, 시선을 맞추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 그 애매한 거리감이...)
(매번 나를 두렵게 했어. 최강을 자처하는 주제에, 이런 몸으로는 언제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라하가 가볍게 웃어 보입니다.
 
수정공:이만 말을 줄이고 싶어도... 그대가 보여준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들뜬 상태로 목소리를 내게 되는군.
몇 번이고 아니라고 전해줘도 말이야, 계속해서 멈추지 않는 그대의 굳은 심지가 진심을 다해 좋았어.
또 다시... 그대는 클리셰를 좋아하는 이들의 곁에 남게 되는 거구나.
 
메테오:그만, 말하라니까...!!
(끝까지 고집이지. 악을 쓰며 목을 울렸다.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친다.)
(그놈의 낡아빠진 클리셰, 발버둥칠수록 멀어져만 가는 세계와 흐름. 진부할 정도로 악의적인 전개.)
(그 안에서 단 하나, 싫어하지 않았던 클리셰가 있었다면.)
(목젖을 울리며 고동이 차오르게 하는 것. 심장을 뜨겁게, 사지를 차갑게 하는 것.)
(...정의는 있다가도 없고, 필요는 있다가 그치며, 신념은 다만 있었다 사라지는, 이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세계에서.)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모든 것을 바라게 하고, 모든 것을 견뎌내게 했던...)
 
메테오:(유구한 역사 속에서 온 세상을 열광시키며, 수천 수백 년 동안 반복되어 온 단 하나의 감정을.)
...나도, 진심으로... 좋아했어.
(역시 처음부터 인정했어야 했다. 안은 팔에 힘을 싣는다. 흩어지려는 몸을 단단히 붙들고, 엉망으로 터져버린 입술을 맞췄다.)
 
수정공:...그래, 바보같이 감기 얘기나 하고.
 
당신의 말을 들은 그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말려 들어갑니다.
 
수정공:그거면 됐어, 메테오.
이거면 충분해.
역시 너는 나의 최고의 영웅이야.
 
안대가 끊어지고, 그 밑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눈가가 보입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 아래에서 재회의 기쁨이 드러납니다.
 
당신과 만나서 좋았어요.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이어지는 말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서서히 그의 몸이 사라집니다.
 
공중에 흩날리는 눈가루처럼,
 
침식당해 괴로워하던 꼭두각시의 끈은 당신이 끊어주었어요,
 
그는 이제 편안할 거예요.
 
-
 
빛이 완전히 사라진 뒤 드러난 것은 100년 전 테러 때문에 황폐해진 안전지대입니다.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검게 그을리고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 위로 새파란 것들이 하나둘 돋아납니다.
 
응축된 마력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안전지대에는 100년분의 생명력이 넘쳐흐릅니다.
 
곳곳에 꽃과 나무와 풀이 피어납니다.
 
당신의 발치에 핀 민들레가 따뜻한 바람을 타고 흔들거립니다.
 
엉망이 된 거리에는 가동을 멈춘 안드로이드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사람들도 보입니다.
 
갑자기 멈춘 안드로이드를 끌어안은 채 패닉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정말 이 방법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잣대란 쓸모를 잃은 지 오래인걸요.
 
부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아이 하나가 떨어지는 분홍색 꽃잎을 주워듭니다.
 
꽃잎은 당신의 이마 위에도 한 장 내려앉습니다.
 
자연스럽게 꽃의 출처를 찾던 당신의 시선이 한 폐허 앞에서 머무릅니다.
 
만개한 벚나무 아래의 시멘트 바닥에는 낯익은 얼굴의 사람들이 앉아있습니다.
 
아르버트는 자신의 허리에 기댄 채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잠에 빠진 라미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립니다.
 
살랑이는 바람에 연분홍색 꽃잎들이 휘날립니다.
 
당신을 알아본 그는 조금 웃습니다.
 
아르버트:100년간, 깨어나지 못할 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메테오, 너는... 후회 없는 선택을 했나?
 
메테오:.......
(눈앞에 벌어지는 풍경을 넋 나간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멀어지기만 했던 봄. 눈이 멈춰버린 안전지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동료의 목소리.)
(서툴게 웃고 만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못 하겠군.)
 
아르버트:하하, 메테오... 이 광경을 보고 대답도 나오지 않나 보네.
너의 생각이 어떻든, 나는 후회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라미트의 선택도 후회가 없었으리라 믿어.
그렇게 생각하면... 홀가분해.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아르버트:어쩐지 굉장히 졸리군.
 
메테오:...수고 많았다. 좀 쉬어.
 
아르버트:그래, 난 좀... 쉬어야겠다.
지금 잠들면 좋은 꿈을 꿀 것 같단 생각이 들어, 파트너.
 
그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잠시간의 단잠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끝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인간이든 아니든 말이에요.
 
파트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은 그는 다시 없을 만큼 안락하게 끝을 맞이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명을 다한 크리쳐의 편안한 죽음입니다.
 
또 하나의 꽃잎이 살랑거리며 잠든 이의 콧잔등에 내려앉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죽지 않기 위해 싸워온 이들이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 않나요.
 
삶이라는 긴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는 것은 곧,
 
더는 바라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는 것,
 
혹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다음이 궁금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도 분명 행복할 것을 확신하고 눈을 감는 것.
 
많이 힘들었나요,
 
지금까지의 모험담을 돌아볼까요.
 
돌아보면 거칠고 고된 싸움이었지만, 당신의 발자취는 한평생이라는 기나긴 시간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부 다 읽어냈다고 책을 덮기에는 가장 중요한 ‘결말’이 남아있잖아요?
 
...
 
언젠가는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예요.
 
굳이 100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아도,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내려두고 죽음에 몸을 맡기는 날이.
 
가장 아름다운 결말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미사여구가.
 
험한 길이라 해도 조금 더 걸어갑시다.
 
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았습니다.
 
아직 이 세상에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걸요.
 
그러니 조금 더 살아볼까요.
 
분명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이 세계가 더는 클리셰 SF 세계관이 아니게 된다고 하더라도,

 

 

 

 

 

 

 

 

 

 

 

 

 

 

 

 

 

 

 

 

 

 

 

 

 

 

 
메테오:(듣고 있겠지. 이 세계가 더는 클리셰 SF 세계관이 아니게 되었다 해도.)
(너희, 신이라는 놈들이 이 세상을 짜 놓았다면.)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메테오:(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한 번 정도는 친절하게 굴어 줄 수도 있잖아.

 

 

 

 

 

 

 

 

 
*
 
당신은 추락한 중앙 관리 체제를 회수하기 위해 안전지대 중심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팬 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은 보이지 않습니다.
 
메테오: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후, 당신은 새파랗게 돋아난 잔디 위로 무언가가 질질 끌린 자국을 발견합니다.
 
그 자국을 따라 걷는다면,
 
둔탁한 끌린 흔적에 불과하던 것은 50m쯤 지나자 어느덧 사람의 발자국처럼 모양이 변합니다.
 
그 발자국의 끝에는,
 
등을 돌린 사람 하나가 땅을 짚은 채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라하 티아와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이는 천천히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지나치게 긴 머리카락은 왼쪽 눈만을 드러내고 있으며, 드러난 심장부에는 열쇠 모양 탄환이 꽂혀있습니다.
 
신체 일부에서는 고압의 전류가 흘러 곳곳에 청색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의 귓가에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던 미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라하와 같은 색의 눈에 당신을 담은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파트너와 똑같이 생긴 그가 천천히 입을 엽니다.
 
그 순간, 당신은 진부하게도 세상이 멈춘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그는 교과서를 읽듯 또렷하고 기계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그라하 티아:인사하겠습니다.
 
괴물이라기엔 지나치게 인간적이며,
 
그라하 티아:저는 구 방주이며,
 
기계라기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그라하 티아:구 중앙 관리 체제입니다.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끔찍한 존재.
 
그라하 티아:그라하 티아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아니게 된,
 
사람이었던 것들.
 
우리는 그것을 크리쳐라고 부릅니다.
 
끝까지 맞서 싸운 누군가의 영웅,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후의 크리쳐들에게 이 시나리오를 바치며.
 
메테오:...갈수록 못 말리겠다.
일어나.
기준치: 999/499/199
굴림: 8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우리가 강하게 원하면... 어쩌면 세계조차 바꿀 수 있을지 몰라.)
 
메테오:이 머저리, 나의 빌어먹을 파트너.
일어나. 같이 가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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